모차르트의 시체

2004/11/06 22:12

볼프강 모차르트의 장례식은 성 슈테판 사원의 '사자를 위한 예배당' 에서 행해지고 시체는 밤가지 그곳에 안치되었다. 당시의 시체 이송은 밤이 되고서야 해야됐기 때문이다.

그날 밤은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짖궂은 날씨였다. 그래서 예배당에서 시체를 따르는 사람은 친구와 세명의 여성뿐이었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일설에는 너무나 슬퍼했기 때문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비바람은 한층 심해지고 장송에 참가했던 얼마 없던 사람도 시외로 나가는 스투벤 문에서 되돌아갔다. 그래서 천재적 음악가 모차르트의 매장은 입회인 없이 행해졌다.

몇 년 후 미망인인 콘스탄체가 남편 모차르트를 매장한 장소를 성 마르크스 묘지의 묘굴 인부에게 물었더니 그 때의 인부는 그만두고 새로운 사람밖에 없어서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시체는 영구히 행방불명이 되었다.

1855년 시 당국이 모차르트 무덤 자리의 조사에 나섰으나 확증은 못찾은 채 추정 위치인 지금의 성 마르크스 묘지 자리에 1859년 기념비를 세웠다.

2004/11/06 22:12 2004/11/0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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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천문시계

2004/11/06 21:51

프라하 Praha 舊 시청사 앞 광장.
구 시청사에 걸린 천문시계는 프라하 관광에서 볼만한 것 중 하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시마다 사신이 종을 울리며 전례력(Calendarium)과 플라네타리움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원반위에 있는 창이 열려 그리스도의 12사도가 창문 안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정시 가까이 되면 많은 관광객이 이것을 보려고 모여든다.

매시 정각마다 종이 울리면서 파란 창문이 열리고 열두 제자가 등장한 후, 닭이 울면서 끝난다.
창문 아래 해와 달을 뜻하는 원형 시계의 양쪽에는 각 두 개씩의 인형이 있다.
하나는 해골의 모습을, 나머지 셋은 각각 기타, 거울,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골 모양의 인형이 줄을 끌어당기면 나머지 세 인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기타는 쾌락을, 거울은 허영을, 돈 주머니는 부와 사치를 뜻하는데, 이 셋을 탐하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 인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고 한다.

2004/11/06 21:51 2004/11/0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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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6 21:05

롬 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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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집시를 일컫는다.

집시란 본래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영어. 하지만 집시는 자신들을 '롬(인간이라는 의미)'이라고 하고 있다.

집시(gipcy)는 인도 북서부의 펀자브를 본 고향으로 하고 7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무슬림(회교도)이 이 지방을 공략, 어쩔 수 없이 왕국을 버리고 유랑 민족이 된다.

집시가 약 500년 전에 유럽에 나타났을 때, 그 표정을 보고 유럽인은 이집트인이라고 착각하고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집샨), 집샨이라고 부르던 것이 집시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 북구와 북독일에서는 타타르 또는 사라센인, 독일에서는 치고이너, 헝가리에서는 치가니,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에서는 기타노라고 부르고 있다.

2004/11/06 21:05 2004/11/0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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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탄압에 저항하라

2004/06/24 13:50

거짓과 탄압에 저항하라

- 알베르 까뮈 노벨문학상 수상연설문 (1957년 10월 17일 스웨덴 연설)

노벨상 위원회로부터 이같은 영광스런 상을 수상하게 된것은 저에게는 무한한 기쁨이며, 감사의 마음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같은 상이 제 개인적인 능력의 범위를 초과하여 주어지는 것이라 여겨져서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 그리고 보다 뛰어난 지성을 소유한 사람들 즉, 모든 예술가들은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 진정한 모습과 저의 이면에 대한 비교없이는, 저는 결코 이같은 결정에 대해 수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주 젊은 어떤 사람, 불확실한 부를 소유한 그리고 여전히 그의 일이 진행중이며, 그의 일의 고독함속에 익숙해져 있고, 모든이들의 호의로부터 떠나있는 그런 한 사람이 있습니다. 홀로 그리고 스스로 조신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에게, 빛의 영광된 광채로 이끄는 포고, 갑자기 날아든 이같은 소식, 그런 소식을 들은 그는 어떻게 어떠한 종류의 공포스런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그리고 더군다나 유럽안의 다른 작가들, 그들 중 가장 위대한 작가들이 침묵하기를 강요당하고, 심지어 동시에 그들의 조국이 끝없는 불행을 겪고있을때 그는 어떠한 마음으로 이런 영광을 안아야 합니까 ?

저는 충격과 내부의 혼란을 느낍니다. 제가 가졌었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너무나도 풍족한 행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리고 제 자신의 성취안에서 단지 안주하며 살 수 없었던 이후로, 제 전생애를 걸쳐 저를 지원해주고 있는 것, 그것은 심지어 가장 불합리한 상황외에는 사실 지금까지 누구도 저를 지원해 주진 못했었습니다. 제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 작가로서의 임무라고 여겨왔던 그 생각. 저는 오늘 그것만을 말씀 드리고자하며, 영광스런 마음과 호의의 감정을 갖고, 할 수 있는한 최대한 간단히 이같은 저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제 자신의 경우, 저는 예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술을 모든 것의 위에 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만약, 반대로, 그것이 필요한 경우란, 예술이 제 동료로부터 분리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것을 통해 저와같은 사람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살아갈 수 있음을 예술이 허락하기 때문일 겁니다. 일상의 기쁨과 고통의 특징지워진 심상을 제공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 예술가는 자신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예술가를 가장 누추하고, 그리고 가장 절실한 진실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빈번히 예술가의 운명을 선택한 사람은, 만약 그가 다른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의 예술도 그리고 그의 차별적인 시선까지도 감수하면서, 곧 그 자신이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가는 그 자신을 그것없이는 만들 수 없는 미와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그 사회의 중간선상에 자신을 세웁니다. 그와같은 이유로, 진실한 예술가들은 아무것도 꾸짖지 않습니다. : 그들은 판결하기보다는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세상을 선택 해야 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니체의 위대한 말처럼, 그와 같은 사회안에서, 그들이 노동자이건, 지식인이건 간에 마침내는 심판관이 아닌 창조자가 지배하는 사회를 선택할 것입니다.

게다가, 작가의 임무는 어려운 의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명확하게 그는 역사를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헌신안에 자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그런이유로 인해 고통받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않다면, 그는 혼자가 되거나, 자신의 예술을 빼앗기게 되고 맙니다. 수백만의 병사로 이루어진 독재자의 군대도, 그를 그의 고립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특별히, 그가 그들에게 동조를 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 명의 이름없는 죄수의 침묵은 - 세상끝의 이면에서 굴종하기를 거부한 - 작가 자신의 오랜 망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내기에 충분하며, 적어도 언제든지, 자유란 특권의 이름으로, 그 침묵을 잊지않으려 하고, 그리고 그의 예술을 통해서, 그것을 알리고, 또 울려퍼지기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중 누구도 그런 일을 해내기에 충분치 못합니다. 그러나 삶의 모든 환경속에서, 모호하고, 혹은 일시적인 명성안에서, 군주의 무력안에 포위되어서, 혹은 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얻기 위하여,그 작가는 그를 정당화하게 해줄 사회 공동체의 이념을 획득하기에 이르며, 그와 같은 하나의 상황위에서,그의 작업의 위대함을 구성하는 두가지 일에 대한 그의 능력의 한계를 그는 절실히 깨닫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 그것은 진실에 대한 헌신과 자유에 대한 봉사를 말합니다. 그의 일이란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가능성을 하나로 묶는 것이기때문에, 그의 예술은 거짓된 것과 그리고 어디서든지 그들을 지배하려하고, 고독를 만들어내는 노예적 태도와는 절대로 타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나약함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의 지혜의 고귀함이라는 것은, 항상 그대로 지켜내기가 어려운 두가지 책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명확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거짓에의 거부와 탄압에 대한 저항, 바로 그것입니다.

20년이상 계속된 이 광기의 역사안에서, 희망없는 모든 사람처럼 이 격동의 시대의 나의 세대는 무수히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저는 오직 한가지에 의지하여 살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시대를 쓴다는 것이 하나의 명예가 되었던 숨겨진 감정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같은 행동이 저 자신에 대한 하나의 약속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그 약속은 오직 쓴다는 행위, 그것만이 아닙니다. 특히, 저의 능력과 저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것은 같은 역사를 헤쳐온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나누었던 불행과 희망을 생각하며, 동시대의 현실을 참아내기 위한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태어나서, 히틀러가 힘을 얻을 때 20살이었고, 첫 혁명의 시도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며, 스페인내전과 함께 그들의 교육이 완결될 즈음, 세계 모든곳이 전쟁터에 다름아니었던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고, 고통받는 유럽과 그리고 죄수들 - 그들은 오늘날 핵무기의 파괴력이 위협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자식을 양육하며, 그들의 작품을 창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누구도 저는 그들에게 낙천주의자가 될것을 강요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극도의 절망으로 인한 치욕에 대한 복수심과 그 시대에 허무주의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오류까지도 - 어떠한 논쟁없이 - 우리들이 이해해야만 할 거라고 심지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리고 나의 조국과 유럽의 모든 나라 사람들은 허무주의를 거부하여 왔고, 정의에 대한 욕구가 아직도 우리곁에 남아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역사안의 그 일들이 죽음의 본능에 대항하여,솔직히 싸웠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격동의 시대를 경험한 예술을 그들 자신을 위해서 창조해야만 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각 세대는 의심할 바없이 그들의 세계를 개혁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낍니다. 제가 아는바 세계는 개혁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같은 생각자체가 아마도 저는 더 위대한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스스로의 파괴로부터 막아내는 힘에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역사를 상속한다는 것. - 실패한 혁명의 혼란과, 과학기술의 맹신, 신의 죽음, 낡은 이념, 중도적인 힘이 모든것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더이상 어떻게 확신해야 될 지 알지 못하는 곳, 지성이 그것자체로 변질되어, 증오와 외압의 종이 되어 버린 곳 - 이 세대는 그같은 것 자체의 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삶과 죽음의 존엄성을 이루는 그 조그마한 것 그것안에서 아니면 그것없이라도, 우리는 이 시대를 재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파멸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엄중한 재판관들은 영원한 죽음의 왕국을 건립하는데, 위험을 감수하며, -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고서 - 시간을 다투는 이 정신나간 경주안에서, 노예적이지 않는 국가간의 평화를 부활시키고, 다시 노동과 문화를 조화시키며, 그리고 모든 인간들과 함께 인류의 언약의 궤를 다시 짜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이같은 거대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러나 벌써, 세계 모든 곳에서 진실과 자유를 향한 두가지의 도전이 일어나고 있으며, 만약 필요하다면, 꺼리낌없이 그것을 위해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와같은 일들이 어디에서 일어나건 우리는 그런 움직임들에 환영할만한 가치를 느끼며, 특별히 그것 자체가 희생되고 있는 곳을 우리는 눈여겨 보고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하튼, 노벨상 위원회가 저에게 주신 어떤 종류의 상을 저는 이 세대에 대한 경의로 돌려야만 할 것입니다. 동시에, 작가의 작업에 대한 고귀함이 인정된이후에는,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적당한 곳에 그를 놓아야만 할겁니다. 그는 함께 싸웠던 동료들과 그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바램도 없습니다. 비난받을지언정 완강하게, 부조리하지만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이들의 시선 안에서 수치심이나 자만심없이 그의 일에 열중하며, 슬픔과 아름다움을 분리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그리고 마침내는 그 두가지 실존으로부터 창조물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그는 완강히 이 파괴적인 역사의 흐름안에서, 그것들을 바로세우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있은 후, 누가 절대의 이념과 지고한 도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가? 진실은 신비에 쌓이고, 알길없으며 항상 정복당하기 쉽상입니다. 자유는 위태로우며, 우리의 힘든 삶과 함께 할 수없을 만큼, 그것은 의기양양합니다. 우리는 이 지난한 길위에서 우리의 실패에 앞서, 고통스럽지만, 단호하게 이 두가지 목표들을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어떤 작가가 지금부터 명석한 의식으로 감히 미덕의 전도자로서 그 자신을 세울 수 있을까요 ? 제 자신은,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 그와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닒겁니다. 저는 결코 정의와 인간의 희망, 제가 키워왔던 자유에 대한 의지를 포기한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같은 동경이 나의 잘못과 나의 결점을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나의 작업을 보다 잘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저를 도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계속에서 자유로운 행복과 그것의 짧은 복원에 대한 기억만으로 그 자신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절대다수의 침묵하는 사람들은 의심할바없이 여전히 저 자신을 지금도 돕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진정한 제 자신을 뒤돌아보고, 저의 한계를 바로 알고,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채무뿐만 아니라 제 자신의 지켜나가기 어려운 신조 속에서 저는 더욱더 자유로움을 느끼며, 그것안에서, 그 상이 지니고 있는 무게와 저에게 내려진 큰 영광에 대한 보답으로, 같이 투쟁하는 사람들과 이 영광을 공유할것임을 말씀드리며, 그리고 어떠한 특권으로서 이 상을 받지 않고, 오히려 불행과 박해의 편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예를 위해 이 상을 받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모든 진실한 예술가들은 매일매일의 침묵속에서 그 자신을 채찍질 하여 왔으며, 이 성실하며 유구한 약속에 대해 이 상을 수상 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오늘 저는 제 개인적인 감사의 마음를 무한히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2004/06/24 13:50 2004/06/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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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2004/06/09 00:11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y Rachmaninov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네 개의 협주곡 중에서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곡으로 추천 받는 곡이다. 그 로맨틱한 선율과 화려한 피아니즘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곡은 많은 피아니스트가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기교적으로) 곡으로 꼽고 있고, 동시에 가장 연주하고픈 곡으로 꼽기도 하는데 피아니스트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시험하는 악마의 교향곡이라고도 불린다. 비루투우조로서의 피아노 테크닉을 맘껏 구사할 수 있도록 작곡된 곡인 것이다. 이 곡은 또한 피아니스트의 좌절과 고뇌를 그린 영화 샤인에서 주인공이 이 곡을 완벽히 연주하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직후 곧 쓰러져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만든 곡으로도 유명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d단조(3악장)
관련 글
러시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은 그가 1909년 모스크바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재임 중일 때 미국 음악 시장 진출을 노리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초연은 1909년 11월28일 뉴욕에서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네 개의 협주곡 중에서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곡으로 추천받는다. 개개의 선율이 아름다워 전체에 흐르는 달콤한 분위기와 러시아적 정서, 피아노 기교의 묘미가 이 곡을 매력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이곡을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기교적으로) 곡으로 꼽고 있고, 동시에 가장 연주하고픈 곡으로 꼽기도 한다. 이 작품은 로맨틱한 선율과 화려한 피아니즘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번 협주곡이 듣는 이를 한번에 끌어 당기는 흡인력은 강하지만 반복해서 들을 경우 지루해지기 쉬운 반면에 이곡은 처음에 다소 난해하게 들리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일명 악마의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며 피아니스트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시험하는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1악장은 서두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이어 화려한 피아노 독주로 이루어져 있다. 간주곡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2악장은 오보에와 현악기가 교차로 연주되고 있다. 간결한 2악장에 이어 3악장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합주, 경쾌한 피아노연주로 이어진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탄토 d단조 4/4박자
2악장 간주곡. 아다지오 A장조 3/4박자. 변주곡 형식에 의한 3부 형식
3악장 피날레 알라 브레베 d단조 2/2박자. 소나타형식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4개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관련 글

격정적인 그의 음악..

2004/06/09 00:11 2004/06/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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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즈 사강

2004/05/31 15:27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 카자르크 출생. 아버지가 실업가인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소르본대학교(지금의 파리대학교)를 중퇴하였다. 19세 때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1954)이 전례 없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단에 데뷔, 이로 인해 그해의 문학비평상을 받았다. 23세 때 결혼하였으나 곧 이혼하고, 27세 때 재혼을 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다시 이혼하였다. 그녀는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활약을 계속하고 있는데, 남녀간 심리의 섬세한 움직임을 담담한 필치로, 미묘한 분위기와 권태를 자아내면서 묘사하는 그 작풍은 세계 각국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으로 소설 《어떤 미소 Un Certain Sourire》(1956), 《한 달 뒤, 한 해 뒤 Dans un mois, dans un an》(1957),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1959), 《신기한 구름》(1961), 《뜨거운 연애》(1966) 등이 있고, 희곡으로는 《스웨덴의 성(城) Un Chteau en Sude》(1960), 《바이올린은 때때로》(1961), 《발란틴의 연보랏빛 옷》(1962) 등이 있다. 또 발레 각본과 샹송 가사도 썼다. 그러나 50대에는 두 번씩이나 마약복용혐의로 기소되었으며, 타인에 피해가 없는 한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2004/05/31 15:27 2004/05/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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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Randolph Hearst

2004/05/31 14:36

19세기와 20세기 초입을 '옐로우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논쟁으로 미국을 뒤흔들었던 인물, 허스트. 별칭으로 신문왕 허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 옐로우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대중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호기심에 호소하여 흥미본위의 보도를 하는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 경향을 띠는 저널리즘. 신문이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논리가 심화됨에 따라 상품화 됨으로써 대중에 영합, 취재.보도하는 내용이 점차 인간의 불건전한 감정을 자극하는 범죄나 괴기사건(怪奇事件), 성적 추문 등의 선정적인 사건으로 채워지고 이를 과도한 비중으로 다루는 현상을 일컫는다.

1889년에 J.퓰리처가 《뉴욕 월드》 일요판에 황색의 옷을 입은 소년 ‘옐로 키드(yellow kid)’ 만화를 게재하였는데, 이를 흉내낸 W.R.허스트의 《모닝 저널》과의 사이에 선정주의(煽情主義:sensationalism)의 치열한 경쟁을 전개함으로써 이 호칭이 생겼다. 그 이후 선정적 기사를 게재하는 신문을 옐로 프레스(yellow press) 또는 옐로 페이퍼(yellow paper)라 부르게 되었다.

즉, 인간의 불건전한 감정을 자극하는 범죄, 괴기사건(怪奇事件), 성(性)적인 기사등을 과대하게 취재,보도하는 신문의 경향을 말한다. 이는 신문의 무조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에서 나타난 부산물인 것이다.

옐로저널리즘의 특징은 편집에 있어서 대형의 제목을 사용하고, 사진의 과다한 사용이 특징이며 내용에 있어서 모든 방면에 선정주의 적인 사실을 소재로 하고 만화 또는 천박한 내용의 기사를 주로한 일요특집이나 부록을 발행한다는 것 등이다.

이후 선정적 기사를 게재하는 신문을 가리켜 옐로 프레스(yellow press) 또는 옐로 페이퍼(yellow paper) 라 부르게 되었다.

2004/05/31 14:36 2004/05/3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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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old Clayton Urey

2004/05/31 14:21

Harold Clayton Urey, 유리 : 1893 - 1981

미국의 물리화학자. 처음에는 몬태나 대학에서 동물학을 배우고, 나중에 화학으로 전향하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G. N. 루이스의 지도를 받았다. 1917년부터 2년간 필라델피아의 화학회사에 근무한 다음, 몬태나 대학 강사가 되었으며(1919∼1923), 1923년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에 유학, N.H.D.보어의 지도를 받았다.귀국한 후, 콜롬비아 대학 교수로 있던 동안에 5년간 맨해튼계획(원자폭탄제조)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1934∼1945). 1945년에는 시카고 대학 교수로 전임하였다.

주요 업적으로는 1931년 처음으로 중수(重水)를 분리시키고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重水素)를 발견하였다. 이 업적으로 193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이후에도 질소, 탄소, 황 등의 동위원소를 분리하고, 기체의 엔트로피, 흡수스펙트럼, 분자구조 등의 연구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우라늄 235U 및 중수소를 농축하는 방법과 붕소의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계평화와 국제간의 이해를 촉진하는 원자과학자의 운동을 추진하였다. 데이비상(賞)을 비롯한 많은 상을 수상하였고 A. E. 루아크와의 공저 《원자, 분자, 양자(量子) : Atoms, Molecules and Quanta》(1930)가 있다.

2004/05/31 14:21 2004/05/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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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 Ellington

2004/05/31 14:18

Duke Ellington

스윙시대를 이끌었던 "스윙의 대부"인 듀크 엘링턴은 수천곡의 작곡을 한 뛰어난 재즈피아노 연주가이다. 1899년에 태어나 1974년 까지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 추천곡
1-Black Beauty
2-Coloratura
3-Happy Go Lucky Local
4-Jumpin' Room Only
5-Round Midnight
6-Sophisticated Lady
7-Take The 'A' Train
8-The Minor Goes Muggin'
9-Things Ain't What They Used To Be
10-Tonk

* Azalea - Duke Ellington & Louis Armstrong


<하루키 재즈에세이>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천재라는 사람들은 흔히 성미가 급하고 단명한다고들 하는데, 듀크 엘링턴은 그 재기에 넘치는 인생을 실로 우아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자신의 위상을 지키며 살았다. 정말 끝까지 멋들어지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적적일 만큼 풍부한 음악적 수맥은, 드넓은 들판의 구석구석을, 하나 남김없이 촉촉하게 적셨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이 재즈 역사에서는 경하할 일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거대한 인물이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활약하다 보면 골치 아픈 일도 따른다. 멋진 곡은 수도 없이 많고, 멋진 연주도 많이 남는다. 아니 멋진 곡이 너무 많다. 듀크 엘링턴이 남긴 방대한 레코드 중에서 어느 한 장을 고르려할 때, 우리들은 마치 만리장성 앞에 선 야만족처럼, 압도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감히 용기를 내어 한정하자면,
1) 내가 좋아하는 엘링턴은 1939년 후반에서 40년대 전반에 걸쳐, 그렇게 '난해'하지도 않고 그렇게 와일드하지도 않은, 재미있고 세련된 엘링턴이다. 특히 지미 브랜튼과 함께 활동한 시대를 전후한 연주가 좋다.
2) 그 중에서도 더 범위를 좁히면, 가장 좋아하는 LP는 RCA에서 나온 이다.
3) 그것을 좀더 개인적으로 한정하면 B면을 좋아한다. 아무튼 이 레코드는 몇 번 들어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싫증나지 않는다. 물론 밴드 멤버도 불평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호지스, 웹스터, 쿠티, 비가드, 카네이....... 그야말로 엘링턴 악단의 황금시대다. 그 이상 뭘 요구할 것인가?

LP 에는 유명한 표제곡 외에, '올 투 순' '침대 속의 돌' 같은, 내가 애호하는 수더분한 곡도 들어 있다. '솔리튜드'(Solitude), '새턴 돌'(Satin Doll) 등, 엘링턴이 작곡한 유명한 곡은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좋다. 그러나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곡 중에도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감동케 하는 명품이 얼마든지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비밀스런 명곡을 자신의 귀로 하나하나 발견하는 것도 엘링턴의 음악의 숲 -- 엄청나게 거대한 숲이다 -- 을 헤치고 들어가는 커다란 기쁨 중에 하나이다.

' 침대 속의 돌'에서 아이비 앤더슨의 노래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민다. 신기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그런데다 근원적으로 블루시한 그녀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공예품 같은 버니 비가드의 클라리넷 솔로와 얽혀드는 부분이 되면 그 조화의 묘가 정점에 달한다. 거기에는 듣는 이의 비위를 맞추는 아첨이 없다. 우리들이 느끼는 것은 진정 뛰어난 음악이 불현듯 내 몸에 다가왔을 때, 어디에선가 조용히 샘솟는 깊은 공감과 넉넉한 자비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2004/05/31 14:18 2004/05/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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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친구가 방금 전화를 걸어와서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이며 대체 왜 그렇게 나뉘어진 것이냐고 물어본다. 내 답변은 이랬다.

지역구는 각 지역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고,
비례대표는 전문성을 띈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친구, 그 답변에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또한 나도 그랬다.

그래서 약간의 조사를 해봤다.

* 비례대표는 원래는 직능단체대표나 국정에 도움이 되는 각분야의 뛰어난 지식인을 국정에 참여시켜 (국회의원이 되게 해서) 각계 각층의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고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 비례대표제는 지역대표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로서 투표가치의 등가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 비례대표제의 목적
① 소수파에게도 그 득표비례에 따라 의석을 부여하여 소수대표를 보장
② 당선기수를 초과하는 표를 사장시키지 않고 이양시켜 선거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표 방지
③ 득표수와 의석수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는 의석비례보장
④ 유권자의사를 존중하는 여론의 복합성 안정

* 의석배분
선거결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할당받기 위해선 정당투표에서 3% 이상을 득표하거나 지역구 후보 투표에서 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
의석할당의 기준이 되는 득표비율은 각 의석할당 정당의 총득표수를 의석할당 정당들의 득표수로 나눠 산출하게 된다. 즉, 득표율이 의석을 배부받을 수 있는 조건에 못미치는 정당의 득표수는 제외하고 산출하게 된다.
의석 배분은 의석할당을 받을 각 정당의 득표비율에 비례대표 의석 56을 곱해 산출된 수의 정수 부분 만큼의 의석을 우선 해당 정당에 배분하고 잔여의석은 소수점 이하가 큰 순으로 56석에 달할 때까지 1석씩 배분한다.

∴ 결론
지역구국회의원은 각 선거구에 배정된 각당의 후보들을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하는 국회의원이고,
비례대표국회의원은 각 당이 얻은 전국득표율(비례대표후보선출용지로)에 비례해 선관위에 신고한 순번으로 선출되는 국회의원이다.

왜 나뉘었느냐는 위의 설명에 나와 있듯이 "전문성을 가진 지식인을 국정에 참여시키고, 유권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표를 방지하기 위함" 이다.

2004/04/14 17:42 2004/04/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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