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 나때에야 국민학교였지만 - 다닐 때 조차도 그 이름을 들은것이 기억난다.
탁 책상을 내리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
말이야 방구야..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도 혀를 찼던 상황.
나라의 민주주의를 욕망하던 민주투사들, 박종철과 같은 대학생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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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학번인 나 때는 전년도인 96년도 한총련 연세대 사태가 너무 심각해서 학생운동이 거의 소멸한 시기였다. 아직도 당시 뉴스화면이 떠올려진다. 골목길을 점거하고 학생들을 뒤쫓아 패고 다니던 전경들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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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던 나 또한 2008년 명박산성 시위때 인사동에서 한번 경험을 했다.
일요일 오전 9시 인사동 안국역에서 시위를 하자는 시민들의 발언에 나 또한 동참을 하고 갔었다. 9시가 되어가니 종각방향에서 몇종대는 되어보이는 전경들이 전투복을 하고 전투봉을 쥐고 탁탁 탁탁 하면서 방패를 내리치며 이동해 오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던 시민들이 그들을 항해 종대로 서서 이동하다 그들이 와아... 하면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자 모두 두려움에 흩어져 도망쳤다. 나 또한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힐 듯이 무서움에 골목길로 뛰쳐가 잡히면 안된다는 일념하에 이리저리 뛰다 가까스로 조계사로 도망쳤다. 그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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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1987년도는 내가 경험한 인사동의 사건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무서운 시기였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 학생운동을 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정말 목숨을 걸었던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1987년 플라자호텔 맞은편 시청앞 공원에 모였던 수많은 인파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바로 이은 대선에서 전두환을 이은 보통사람을 표방하던 동류 노태우가 당선되었을때 그들은 얼마나 허탈하고 실의에 빠졌을까. 아마도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분들이 작년 대선때 문재인 대통령을 찍고, 투표참여도 컸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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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금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자유가 저런 문제적 사태와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일궈졌다는 것을, 부디 모든 유권자들이 투표권 - 투표를 해서 뽑을 수 있다는 이 권리를 무시하지 않기를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나는 놈놈놈 에서야 송강호가 참 매력적인 배우로 보였다. 초록물고기든 넘버쓰리든 그 영화들에서는 딱히 눈에 띤다고 생각되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 필모그래피는 모두들 알다시피 열거하는게 어이없을 정도로 멋진 배우가 되었다.
이 배우가 보여줄 택시 운전사가 참으로 기대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어 되려 고마웠다.
#. 크레취만
독일군 전문배우라는 타이틀은 이 영화에 대한 기사가 수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알게 되었다. 솔직히 잘 모른다.
동독에서 탈출한 이력이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고있는 나로써는 그것이 더욱 이 배우에게 느껴지는 동질감이다.
피아니스트의 그 장교가 이 배우였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장면 정말 뭉클했었는데..
#. 광주에 대한 나의 이야기 via 푸른눈의 목격자
우리 부모님은 전라도 출신이다.
나는 계속 서울에서 지냈고, 심지어 전라도 출신임을 어떻게 해서든 사는 동안 피해받지 않게 하려고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의 본적지를 추후에 서울로 바꿨을 정도로 편견을 당하며 살아왔다. - 그 편견의 구체적인 건 잘 모른다. 하지만 자녀들의 본적지를 행정적으로 바꿀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을 만큼이었던것이다. -
-1. 내 기억에서 가장 처음 기억나는 대통령 선거때(노태우가 당선되었던) 대통령=왕 이라는 이미지가 있던 내게 대통령 선거라는 엄청난 사건이 무서운 일이어서 물어본 엄마의 반응은 그래도 우리에 대한 편견은 바뀌지 않을거야 라는 표정이었다.
-2. 내가 광주에 대한 사건을 알게 된건,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 (조안리 저)을 읽고 있던 언니가 책을 읽다 '광주사태'라는 표현으로 출판사에 이의제기를 할때였다. 그게 뭔데? 뭐가 잘못된거야? 라는 것으로 알게 된. - 해당 책에 지금도 그렇게 표기되어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초판발행때였으니 -
-3. 그 후에 다시 제대로 해당 사건에 대해 알게 된건 KBS 에서 방영했던 "80년 5월 푸른눈의 목격자"(블로그에 글을 올렸었으나 http://ham-gge.com/ttd/335 서버 바이러스로 글을 잃.었.다... ㅠㅠ) 를 시청하고 나서였다. 누군가가 보라고 해서 VOD로 봤던건지 실시간이었던지는 확실치 않다. 아, 이건 정말 엄청난 사건이구나. 말도 안되는 사건이구나. 여명의 눈동자를 시청하다 윤여옥이 임신부를 가장하고 있다 위장이 탄로나 긴박했던 상황을 보던 것과 거의 유사한 충격을 받았던거 같다.
-4. 그후 강풀 작가의 "26년 후" 를 읽으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던 광주의 사건을 겉핥기 식으로라도 제대로 접하게 되었다.
이게 5.18 광주진압군인들에게 내려졌던 작전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건 상당히 오래 뒤의 일이었다. 동명의 영화를 개봉할때야 알게된. 그 전에 박하사탕에서 진압군이 었던 당사자가 "나 돌아갈래" 하고 외치던 때엔 모르던 사실이었다. 택시운전사를 보기전에 또는 보고난 후에 꼭 같이 한번 보기를 권한다.
주춤하던 시민들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던 이뭐병,촛불문화제 2008/06/01 09:48
2008년 6월의 촛불집회. 시민들이 일제히 광화문 앞에 모여서 이명박에 대항해 집회를 열었던 그 때를 기억하시는지. 당시 참여했던 집회에 대해서 기록했던 글이었다.
그 중 일부가 검색으로 발견되어 남긴다.
... 괜찮았는데 갑자기 시민들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전경들은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함성을 지르더니 시민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겁이 나서 뒤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
뒤에서 귀신이 쫓아오듯 뒷머리가 쭈뼛쭈뼛 서던. 그 때.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날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시민들을 향해 경찰에 소속된 전경들이 폭력을 휘둘렀다. 그 집회기간동안 생명을 잃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명박정부는 시민을 군화발로 짖밟는 전두환과 다를 바 없는 정권이다. 또한 그 시절의 언론과 마찬가지로 어떤 언론도 정당하게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암흑기를 살고 있다. 답답하다.
당시 이런 문구가 시대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2008년 6월 1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당시의 심각상은 국제사회에서 보낸 의견으로도 살펴 볼 수 있다. "세계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성명서를 발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해 '폭력진압을 즉각 중단하고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난 이렇게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이요원이 시민들에게 외치는 절규와 함께 흘러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 분노가 치밀었다. 아직도 전두환이 살아있는 것에. 심지어 그런 전두환에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를 떠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 붙이는 대한민국에. 그런 한나라당이 대한민국 제1당이라는 것에.
#. 영화는 내가 원하는 만큼 심각하지 않았으나(아니 너무 가벼웠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밝혔듯이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나중에는 정말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 박히고 나면 그 때는 누군가가 진실된 눈으로 진실을 말해주겠지. 무거우나 사명감을 가지고.
#. 영화의 제목인 화려한 휴가는 당시 전두환이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하라며 내세운 작전명이다.
#.
역사적 사실과 함께 장문의 글을 썼었는데.. 아 정말 눈물 나도록 안타깝다. 그 기록들이. 애써 모은 자료들이었는데. 홈페이지 바이러스 때문에 일부만 남아 기록해둔다.
#. 제작정보
화려한 휴가 May 18 2007 KR ★★☆
드라마, 실화 / 한국/ 125분/ 2007 .07.25 개봉 감독 : 김지훈 / 출연배우 :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명동 롯데시네마
한국노총은 21일 오후 1시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조합원 2만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4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한국노총은 이날 '정부의 파견법개악안(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개정법률안 등)은 비정규직노동자를 확산시키는 법'이라며 이의 폐기를 촉구했다. 또한 국회가 파견근로자법을 강행, 처리할 경우 11월말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포했다.
어제 종로를 지나가던 중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전체 노동자 비정규직화 파견악법 폐기하라',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 '연기금, 국민연금 개악저지'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 등을 들고 '노동자 총단결로 노동악법 저지하자' 등의 구호를 외쳐대는 그들을 보며 근로자파견법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기에, 인간의 노동력을 사고파는데 있어 개입되는 반인륜적 중간착취의 문제는 근대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차원의 것이다. 하기에 파견제도는 파견법 시행 이전에는 엄격히 금지해왔다. 그러다가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와 이미 불법적으로 자행되어온 "파견노동자 보호"를 명목으로 지난 1998년부터 시행해 온 것이 바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다.
시행 6년째인 현재 파견노동자에 대한 진정한 보호가 입법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가.
수 십 만에 이르는 합법적인 형태의 파견노동자는 합법적으로 저임금과 중간착취에 시달린다. 원청에서 파견업체에 제 돈을 주더라도, 부가세 10%를 기본으로 떼고, 관리비, 세금, 보험료,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중간착취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는 법논리 때문이다. 2년이 지나면 직접고용해야 하는 보호조항은 2년이 되기 전날 반복해서 해고되는 현실을 낳았다. 원청과 파견업체 사이에 계약이 해지되면, 자동으로 파견노동자를 해고한다. 억울하고 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실질 권한 있는 원청업체는 사용자 책임을 편법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도대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무슨 '보호'를 하고 있는가' 라고 울부짖는다.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근로자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생각한 바는 이렇다. 비정규직이 사라질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만큼은 막자는 것이 정부가 이 법안을 마련한 취지다. 정부는 법안이 시행되면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해지고, 이 과정을 통해 현재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이 서서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또 이같은 비정규직의 임금 상승 등으로 비용절감 효과가 줄어들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고 계산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허용업종 등은 확대했지만 차별금지, 상시적 채용금지 등에 대해서는 허술하게 규정한 파견법의 문제점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법안에 ‘불합리한 차별’ 등으로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입법취지가 무색할 뿐만 아니라, 설령 차별을 받고 있다 해도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사용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 임시직이나 파견직을 쓸 수 있는지 그 필요성에 대한 기준, 이른바 사유제한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기간제 계약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되 합리적 사유가 있으면 3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를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3년짜리 임시직’을 제도화·공식화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이번 개정안에서, 파견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건설공사·선원·유해 업무 등 몇 개의 업무를 제외한 전체 업종에 파견노동을 허용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경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화가 무분별하게 확산, 구조적 성차별이 강화된다는 게 여성계 입장이다. (2003년 현재 전체 파견노동자 5만여명 중 3만6000명이 여성이다. 파견노동자로 전락한 여성들은 대부분 임금 삭감,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기간이 제한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현실적으로 1년간의 육아휴직은 커녕 3개월 산전후휴가조차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우며, 임신·출산에 따른 부당해고 등의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네덜란드의 유연안정성법(Flex Wet)이 떠올랐다. 기간제 계약 남용 방지, 그리고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내용들을 명시하고 있는 이 법은 현재 한국의 고용주와 파견업체가 시행하고 있는 - 2년되는 날 전일 해고 하는 행동, 동일한 업무를 하는 곳으로 재취업을 시켜주면서 임금은 연차수당이 붙지 않는 불합리한 처사를 보여주는 등 - 노동시장의 모습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연안정성법은 예를 들어 파견회사와 맺은 임시고용계약도 고용계약으로 간주하고, 연속 계약의 일부가 파견회사를 위한 경우에도 연속계약으로 간주하며,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한 노동자파견회사와 노동조합의 단체협상을 통해 파견노동자들에게 연금과 직업훈련 등에 있어 고용기간에 따라 단계별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이정도의 고용안정만 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열씸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말뿐인 상사들의 회유에 늘상 속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들. 그 기대감으로 열씸히 하다 짤리게 된 수많은 상처받은 노동자들. 그들이 거리로 나와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조금 더 안정적인 개법안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는 작가 최소연씨의 구상으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해야 할 미술관이 대형화, 권력화 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진정한 열린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지향하는 문화운동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뉴욕에서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내로라 하는 작가들도 정상급 미술관에서의 개인전 경력을 따기 위해 막대하게 기증을 하는 등 미술관 자체가 브랜드화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고 있고 작가들은 그러한 미술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된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대상은 10월에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 이다. 철저하게 예약 관객만 받고, 예약 시간도 오전 10시부터 두시간밖에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예약 전화는 폭주하여 전화통화에 성공하기조차 어렵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미 예약이 12월까지 잡혀여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미술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리움' 이 이들의 프로젝트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이다. 다행이라면 이렇게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에 한국의 미술관이 선택되었다는 것 아닐까.
'접는 삼성미술관 리움' 작업을 위해 작가 스스로 엄한 경비를 뚫고 개관 준비단계의 리움에 숨어 들어갔고, 국내 미술계에 포진한 그의 운동원들도 개관식에 참석해 리움 내ㆍ외부의 사진을 찍고 그때 가져온 물품들을 전시에 내놓는다. 최 작가는 12월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 캠프를 설치하고, 루브르 박물관까지 ‘접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는 현재 서울을 거점으로 미술관에 관한 탐구와 더불어 실험과 운동을 진행 중이다. ‘접는 삼성미술관 리움’ 캠프를 시작으로 하여 세상의 거대한 뮤지엄들을 차츰 접어나가는 제 6, 7의 지속적인 캠프를 계획하여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고자 한다.
접는 미술관의 멤버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10월 20일부터 인사미술공간에 마련된 캠프에서 가입할 수 있다.
‘접는 미술관’ 다섯 번째 프로젝트 : 접는 ‘삼성미술관 리움 LEEUM’ 2004. 10. 20 - 10. 31 초대일시 : 2004. 10. 20 수요일 오후 5시 인사아트(전시정보) 접는미술관 홈페이지
차마 꺼내지 못하겠다. 그 한마디가 되려 욕보이게 하는것같아 입을 꾹 다물고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이 바짝 타들어간다. 불안.초조. 제발 우려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능한 나는 촛불을 들고 있는것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더이다..
그 부모님의 눈물이 너무 가슴이 아파. 내 가슴을 짖누른다.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수가 없다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것이란 말이냐. 국익이라구. 우리가 할일은 파병반대나 외치는거라구. 그따위의 말을 진정 해야만 했는가.
518 오늘... 또, 먹고살기위해 새벽 잠을 청하고 아침에 또, 잊어버리며 출근을 합니다.
그저 518의 단상만 생각하는 우리가 아닌, 그 518을 영원히 기억할수있는 그런 우리가 됬으면 합니다.
518의 민주항쟁을 폭도로 매도하고, 전두환을 극렬찬양한 조선일보가 폐간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전두환이 어서빨리 죽임을 당하길 원합니다..
p.s 친한 친구 한놈이 새벽녘에 그럽니다. '전두환 정말 죽여버릴까' '야 그래라. 너 사형은 분명 안당할꺼야' '김영삼도 죽일까' '야 김영삼까진 좀 그렇지 않냐. 그냥 중상으로 끝내' '야 나 사형안당하게 전국적인 서명운동 받고 그래야해' '알겠어 걱정말고 죽이기나 해. 내가 너 꼭 의사되게 해줄께'
농담이겠지요. 하지만. 저 더러운 쓰레기 같은 전두환은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그런 놈입니다. 그런 놈이 전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세금을 받아먹고 있는것도 아깝습니다. 짜증납니다. 원통합니다. 518의 영령앞에 무릎꿇고 사죄드립니다.. 아무것도 하지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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