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When the Day Comes 2017 KR

2018/06/09 14:17

1987 When the Day Comes 2017 KR
드라마, 역사, 실화 / 한국 / 129분 / 개봉 2017 .12.27
제작: 우정필름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감독: 장준환 (각색)
각본: 김경찬
배우: 김윤석(박처장), 하정우(공안부장), 유해진(한병용) 김태리(연희) 조우진(박종철 삼촌) 박경혜(정미)
까메오: 우현 (강본부장) 설경구(김정남) 여진구(박종철) 강동원(이한열)  문성근(안기부장) 문소리(버스 위 호헌철폐 선창)
2018-02-07 올레티비

박종철 살인사건은 참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 나때에야 국민학교였지만 - 다닐 때 조차도 그 이름을 들은것이 기억난다.
탁 책상을 내리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

말이야 방구야..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도 혀를 찼던 상황.
나라의 민주주의를 욕망하던 민주투사들, 박종철과 같은 대학생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97학번인 나 때는 전년도인 96년도 한총련 연세대 사태가 너무 심각해서 학생운동이 거의 소멸한 시기였다. 아직도 당시 뉴스화면이 떠올려진다. 골목길을 점거하고 학생들을 뒤쫓아 패고 다니던 전경들의 모습이.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던 나 또한 2008년 명박산성 시위때 인사동에서 한번 경험을 했다.

일요일 오전 9시 인사동 안국역에서 시위를 하자는 시민들의 발언에 나 또한 동참을 하고 갔었다. 9시가 되어가니 종각방향에서 몇종대는 되어보이는 전경들이 전투복을 하고 전투봉을 쥐고 탁탁 탁탁 하면서 방패를 내리치며 이동해 오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던 시민들이 그들을 항해 종대로 서서 이동하다 그들이 와아... 하면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자 모두 두려움에 흩어져 도망쳤다. 나 또한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힐 듯이 무서움에 골목길로 뛰쳐가 잡히면 안된다는 일념하에 이리저리 뛰다 가까스로 조계사로 도망쳤다. 그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당시 1987년도는 내가 경험한 인사동의 사건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무서운 시기였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 학생운동을 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정말 목숨을 걸었던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1987년 플라자호텔 맞은편 시청앞 공원에 모였던 수많은 인파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바로 이은 대선에서 전두환을 이은 보통사람을 표방하던 동류 노태우가 당선되었을때 그들은 얼마나 허탈하고 실의에 빠졌을까. 아마도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분들이 작년 대선때 문재인 대통령을 찍고, 투표참여도 컸지 않았을까.

2018년.. 지금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자유가 저런 문제적 사태와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일궈졌다는 것을,  부디 모든 유권자들이 투표권 - 투표를 해서 뽑을 수 있다는 이 권리를 무시하지 않기를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2018/06/09 14:17 2018/06/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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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종의 차이

2011/08/24 02:48

조와 종의 차이 2006/09/28 16:00

조선의 역대 왕들의 묘호는 "종"과 "조"로 나뉘어 지는데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묘호는 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그 묘실을 가리키기 위하여 조정에서 왕의 사후 그 왕의 치적에 걸맞게 중신회의에서 정하였다. 조정에서 묘호를 정할 때에는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원칙에 입각하여 왕이 재위 기간에 국가에 공 功(나라를 세웠거나 변란에서 백성을 구한 커다란 업적이 있는)이 많으면 "조(祖)"를, 국가에 덕 德(앞선 왕의 치적을 이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문물을 융성하게 한)을 많이 쌓았으면 "종(宗)"을 붙이도록 하였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 이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거나 신하들이 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지어 올리는 시호와 존호도 있다. 예를 들면 이성계의 정식 호칭은 "태조 강헌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이다. 이 중 태조는 묘호이고 강헌대왕은 시호 나머지는 존호인 셈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왕건은 태조라고 불리웠고 몽고 간섭기에는 충렬왕 등"충"자를 앞에 붙였는데 이는 몽고에 충성을 다했다는 표시로 부끄러운 역사의 일면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정한 묘호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선조의 경우, 처음 묘호가 선종이었으나 국난(임진왜란) 극복 등 커다란 공이 있다고 일부 신하들이 주장해 선조로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광해군이나 연산군처럼 "군"으로 불리는 왕들은 어떻게 붙여진 이름일까.

군이라는 것은 원래 왕자들이나 왕의 형제, 또는 종친부나 공신에게 주어지던 호칭이다. 광해군과 연산군의 경우는 재위 기간 중 국가와 민생에 커다란 해를 끼친 폭군으로서 폐위되었기 때문에 왕으로 대접하지 않고 군(결국 왕이 되기 전의 왕자 위치로 돌아간 것)으로 봉해진 것이다. 따라서 역대 왕과 왕비, 추존왕(追尊王 :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죽은 뒤에 묘호가 내려진 왕)과 왕비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도 광해군과 연산군의 신위는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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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2011/08/23 21:35

그날이 오면 2005/08/16 10:57

그 날이 오면 - 심 훈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년 3·1절을 맞이하여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시인의 감격을 되살리면서, 광복된 조국의 그날을 열정적으로 노래한 민족항일기의 대표적인 저항시..
가끔 심훈시인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몰래 벅차오를 때가 있다. 같이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우리가 제대로 된 광복을 만들어냈더라면,
적어도 친일의 잔존만이라도 제거했더라면
독립운동을 했던 명사들 앞에 부끄럽지는 않을텐데..



2011/08/23 21:35 2011/08/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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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사람들

2005/04/18 12:47

우리에겐 늘 이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중국에 정치적인 지배를 받아왔던 시절에도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도
미군에 의해 실질적인 통치를 받던 시절에도.
늘 대한민국보단 지배세력의 도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것이 문제인 것은, 그들이 그러하다는 것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살아오므로써 경제적인 권력적인 이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애국지사의 자손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기 힘들고, 지배세력 만세를 외치던 이들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잘 먹고 살고 있으니.. 한 20년만 흐르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려나..

via 노대통령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 사고 문제"

2005/04/18 12:47 2005/04/1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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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

2005/03/18 00:32

독도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상당히 궁금하다.
일본측에서는 지금 한국에서 상당히 강경하게 대응하는데에 있어 당혹해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북한과 합심해서 입장을 발표하게 된다면 아마도 더 크게 당혹해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해서 가만히 있을리는 없고.
지난달 조선중앙통신에서 밝혔듯, 일본이 침략의 구실을 만들고있다는 반응에서 조금 더 수위를 높여서 발언해준다면. 저들은 아마도 초긴장해야 할것이다.
핵폭탄 있는거, 너희두 알지? 이 정도의 발언이라면..

2005/03/18 00:32 2005/03/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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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편입사건

2004/10/12 23:33

일본이 독도를 강제로 자국의 영토에 편입한 시기는? (2002)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키는 불법행위를 자행한 시점은? (1996)


어느 시험의 국사 문제지문이다.
솔직히 오늘까지는 그저 단순히 일제시대때 그렇게 되었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던 나이다.
그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강조만 할 줄 알았지 조금더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었다.
미안하다.

정답은



이위종의 한국을 위한 호소
「 한국민과 정부는 한국독립의 유지와 영토보전을 위한다는 일본의 약속을 믿고 러시아와 싸우는 데 있어서 일본을 도왔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태도가 바뀌어 한국영토를 강점하고 미개간지를 보상도 없이 약탈해 갔고, 대신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에 반항하는 한국인을 총칼로 진압시켰다. (중략) 이에 한국인이 모두 죽든가 아니면 한국의 독립과 자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에 있어서 극동의 평화는 있을 리 없다. 결국 일본은 한국의 독립과 문호개방에 대한 엄숙한 약속을 위반하였다. 」

- 1907년 8월 22일, 미국 The Independent 에 실린 글 요약.


현재. 한국에 독립과 자유가 이루어졌어도, 극동은 절대 평화가 깃든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비단 북한의 핵위협 뿐만이 아니다. 그런 일본이 이사국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우리를 위해서 절대 저지해야 할 일이다.

2004/10/12 23:33 2004/10/1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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