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녀라면 In Her Shoes 2005 US

2011/08/24 10:34

코미디, 드라마, 가족 /  미국 / 130분 / 2006 .01.12 개봉
감독 : 커티스 핸슨 / 출연배우 : 카메론 디아즈, 토니 콜렛, 셜리 맥클레인
집 2009/02/27 22:37

가족성장드라마라고 봐도 될까.. 자매의 애증에 대한 영화?
in her shoes 란, in one's shoes 라는 의미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의미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의미. (예를 들어, What if you were in my shoes? 네가 내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니?로 해석)
영화속에서 나오는 문학작품 2가지가 제일 인상에 남았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에게 난독증을 극복해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책, 엘리자베스 비숍 (Elizabeth Bishop)의 "On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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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결혼식에서 들려주는 E.E.커밍스 E.E. Cummings 의 "I carry your heart with me"
이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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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0:34 2011/08/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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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브라우닝

2011/08/24 07:15

로버트 브라우닝 문학   2007/10/29 15:28

Robert Browning

영국 빅토리아조를 대표하는 시인.
상대방을 의식하면서 독백하는 형식인 극적 독백의 수법으로《리포 리피 신부》,《안드레아 델 사르토》 등의 명작을 남겼다. 또 2만 행이 넘는 대작 《반지와 책》을 완성했다.
As a writer, Browning was regarded as a failure for many years, living in the shadow of his wife Elizabeth Barrett Browning. However, late in life Browning’s brilliant use of dramatic monologue made him a literary icon. Today, his most widely read work is Men and Women, a collection of dramatic monologues dedicated to his wife.

그의 아내인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Elizabeth Browning 과 부부의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를 써서 유명하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세요.
"그녀의 미소가 예뻐서
그녀의 모습과 상냥한 말씨가 예뻐서
내 생각과 잘 어울리며 어느 날 내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준
그녀의 생각이 신통해 사랑한다"곤 말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것들은, 사랑하는 이여, 제 스스로 변할 수 있고
또 그대 쪽에서 변할 수 있으니, 그렇게 얻어진 사랑은
또 그렇게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예요.
내 볼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그대 연민 때문에 날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대 사랑이 오래 지나면 나는 우는 것을 잊고
그대도 사랑을 잊을 거예요.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세요.
영원히 그대 날 사랑할 수 있도록

Sonnets from the Portuguese 14: If Thou

If thou must love me, let it be for nought
Except for love's sake only. Do not say
I love her for her smile ... her look ... her way
Of speaking gently, ... for a trick of thought
That falls in well with mine, and certes brought
A sense of pleasant ease on such a day'—
For these things in themselves, Belovèd, may
Be changed, or change for thee,—and love, so wrought,
May be unwrought so. Neither love me for
Thine own dear pity's wiping my cheeks dry,—
A creature might forget to weep, who bore
Thy comfort long, and lose thy love thereby!
But love me for love's sake, that evermore
Thou may'st love on, through love's eternity.


엘리자베스 베렛이  여섯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쓴 연시. (링크)



2011/08/24 07:15 2011/08/2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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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실은 베이컨이다

2004/11/06 22:31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영국에서 태어난 극작가이다.
1585년 경 런던 극장에서 일하면서 배우로서 무대에 서고 극작가로서 대뷔한다. 1592년 경부터 극작가로서 인정받아 약 20년 동안 37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세익스피어의 극은 궁정 사회나 생활사정, 의학적 지식, 법률, 박물학, 여러 외국 정보에 정통하고 희대의 교양을 갖춘 자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생각한 일부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라는 촌에서 결코 유복하다고 할 수 없는 집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았고 그 이후 독학을 한 흔적도 없는 그가 실제 작품을 쓴 것이 아닐 것이라고 의혹을 갖게 되었다.
1592년경부터 극작가로서 인정되었지만 1985년경에 런던으로 간 무지한 시골 청년이 7년 만에 희대의 박학을 갖추는 일이 정말 가능했을까. 다른 정서적인 작가의 흉내라면 몰라도 그 희대의 극작가 세익스피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ㅡ. 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문호 세익스피어가 성 트리니티에 잠들어있는 그 남자가 아니라면 진짜는 누굴까. 연구하기 시작한 그들은 당시 박학다식하고 세익스피어 극을 쓸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렌시스 베이컨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프렌시스 베이컨은 16세기 영국에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당시 런던 교외였던 스트랜드의 요크하우스에서 태어났다. 베이컨의 아버지 니콜라스 베이컨은 국새상서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것은 국왕의 다음가는 요직(총리대신, 국새상서, 대주교) 중의 하나이다.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난 베이컨은 12살에 캠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 2년 후 캠브리지를 중퇴하고 그레이즈 인(법학원)에 들어간다. 아버지와 같은 법률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3개월 후 아미아스 포레트 경이 주불 대사에 임명되자 베이컨은 수행원으로 그를 따라 프랑스로 간다. 파리 체제 중, 외교관으로서의 일을 익힐 겸 농업이나 정치학, 금속, 지질학 등을 공부하였다.
1579년 폐렴에 의한 아버지 니콜라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런던으로 돌아온다. 8명 형제에 의한 유산 분배는 당시의 관습대로 장자가 상속, 베이컨은 약간밖에 받지 못했고 고아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 1616년까지의 약 37년 간이나 베이컨은 빚으로 고생하게 된다.
베이컨은 21살에 법정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하고 궁정에 자리를 요청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1584년 하원의원이 되지만 계속 빚에 시달린다. 1593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고문관이 된다. 이걸로 드디어 출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보겠지만, 베이컨의 결정적 출세의 방해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너무나 권력에 집착하는 베이컨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데에 있었다.
그 후에도 빚은 늘어나기만 했고 1598년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한 때 구속된 적도 있다.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 사후, 제임스 6세가 즉위한다. 1604년 제임스의 왕실변호사가 되지만 그건 소위 명예직 같은 것이며 실제 수입이 많지는 않았다. 1607년 드디어 법무차관이 된다. 1611년 베이컨은 법무장관이 된다. 그리고 정적 에드워드 코크의 실각이후 1616년 추밀원 고문관이 되어 드디어 염원하던 출세의 길에 오른다. 같은 해 4월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죽었다. 다음 해, 베이컨은 아버지와 같은 국새상서가 된다. 그 후 대법원이 되고 다음 1618년 대법관에 임명되어 남작의 직함을 얻는다. 1621년 공직을 은퇴하고 집필 활동에 전념,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6년에 서거.

진짜 세익스피어 A - 성 트리니티 교회에 잠든 세익스피어 B - 베이컨 C
A는 B일까 C일까.
당시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연극은 인정받지 못했다. 길거리 약장수보다 조금 나은 정도나 매춘과 비슷한 정도의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B가 A라면 왜 마을로 몰래 돌아가 조용히 죽은 것일까. 왜 런던에서의 성공을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 B는 이름은 빌려줬지만, A가 아니기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A가 C라고 가정해보자.
특권계급으로 태어난 그는 출세욕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출세욕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법률학의 정점에 다다르는. C가 A라 고백하지 않은 이유는 극작가가 아직 매춘과 동등 정도의 직업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에 자살행위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베이컨은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극작가가 되었던 것일까.
야심에 넘치는 그도 돈 문제로 늘 고민했는데, 돈을 꾸는 곳은 언제나 형 안소니에게서였다(안소니가 남긴 날짜가 들어간 차용서는 다수 발견되었다). 베이컨이 50대에 출세하기 전까지 형 안소니가 650파운드는 빌려줬을 거라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계산해봐도 형 안소니로부터 받은 원조의 세배는 필요했을 거라고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거의 제대로 된 수입이 없었던 베이컨은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A=C 이다는 설에서의 결정적 가설.
C와 B는 어찌하다 알게 되었다. B는 배우출신의 보잘것없는 극작가였다. 그래서 계약금의 절반을 받기로 약속하고 C는 B의 이름을 빌려 A의 작품을 쓴 것이다. 아무리 A가 유명해져도 B도 C도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B가 A라고 하면서 세상에 넉살좋게 나온다면 B의 무지가 탄로가 나, 그 결과 C도 드러나가 될 것이다. 약속은 지켜졌고, B는 A에게 받은 돈으로 약간의 돈을 모으게 된다. 그것을 갖고 B는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한 노후를 즐기고 숨을 거둔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1611년 '헨리 8세'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그만뒀다. 이 해에 베이컨은 염원하던 법무장관이 되었다.

ZERO (아이 에이씨 作) - 문호 세익스피어 편

세익스피어는 실은 다른 사람이고 존재하지 않았다 는 설은 모든 국민의 가장 성스러운 신념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단언하는 영국인의 반감을 살 것이다.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가절이 아닐 수 없다.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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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꼽다

2004/08/05 20:01

쓰지 않으면 생각조차 나지 않으며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사용할 일이 없는.
그런 단어가 - 생각조차 나지 않으니 - 많이 있을게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이외수님의 수필집을 읽다가 그런 단어 하나가 들어왔다.


해질녘이면 제일 미치겠다. 낭만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낭만이 밥을 먹여 주느냐고. 아니꼽다.
- 이외수 「버림받은 것들을 위하여」

아니꼽다는 말.
얼마나 오랫만에 본 단어인지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내가 이 단어를 써본적이 있었던가..?
근래에 이 단어를 쓰는 사람. 기억에 없다.

요즘엔, 재수없다. 역겹다. 꺼져라. 뷁. 등의 말로 대체된 듯한 느낌이다.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건가..?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정답게 느껴지기조차 하다.
책읽는 즐거움은 이런 것에서도 온다.

오늘따라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
어감이 그리 좋지 않은 단어, 아니꼽다 , 덕분에 말이다.

2004/08/05 20:01 2004/08/0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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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과 '결혼' 할 수 있을까

2004/06/11 06:30

먼댓글 , 피오넬 |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1
가난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빗대어 말하고 싶다. 가난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이기적인 세상.
여자든 남자든. 가난한 건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피오넬님의 글을 보면.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결혼' 이 가능하냐고 묻는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과 '결혼' 할 수 있을까.

2
난 모든 것이 개인의 사정 혹은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이, 상대가 가난하면 안되는 사정 혹은 능력이 없다면.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기는 힘들 것이다.
집안의 허락이 녹록치 않은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내 능력으로는 결혼하는 상대가 가난하면 도저히 결혼생활을 해나갈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상대와 결혼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본인이, 상대가 가난해도 되는 사정 혹은 능력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기 수월할 것이다.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집안이라면. 내 능력정도면 결혼하는 상대가 가난하더라도 결혼생활을 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는 사람이라면, 그 상대와 결혼하겠다는 그 의지 혹은 결심은 흔들림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은 현실이다.
라고 흔히들 말한다. 나는 능력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라. 는 主義로 사는 사람이기에. 저 현실에 동의한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위해 무작정 결혼하는 상황은 만들어내지 않길 바란다.
주변에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기에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풍문에 의하면. 사랑과 현실 사이에 현실을 택한 사람들은 그 '현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현실을 택한 것을 알기때문에 현실적으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때론 서로간에 사생활 침범하지 말자는 약속을 만들어서 결혼따로 사랑따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괜히 '결혼은 미친짓이다' 의 '그녀' 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사랑을 선택한 결혼이 늘 좋은 결말을 가지고 온다고 보지도 않는다.
주변에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결혼이 실패한 경우를 본적이 없어서 이 또한 말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풍문에 의하면.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 '사랑' 때문에 힘들어도 참는 경우가 많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살고보니 사랑도 식고 점차 왜 저 사람을 사랑했을꼬 하는 푸념만 하게 되는 결혼생활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사랑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같이 사는 사람들이 꽤 있고 보니, 그것만큼 불행한 생활이 없는것같다. 사랑없는 사랑은 내게는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이렇게 말하다보니. 결혼생활이 좋지 않았다던.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떠오른다.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 . 그래서 차라리 해서 후회하련다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풍문으로 들었다.
모든건. 선택의 문제이다.
이 길을 선택해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 길을 선택해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짓이다 를 보면,
현실을 위해 결혼하고 사랑을 위해 동거를 하는 '그녀' 라는 인물과
현실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사랑 때문에 동거를 하는 '나'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애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난 그들이 서로가 단지 '즐기기위해' 동거까지 했다고는 생각하지않기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챕터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more..

미친짓이다.
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본인의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판단을 내려야 한다.
'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이라면 해보겠다 vs 그래도 안하겠다 '
굳이 결혼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로썬.
결혼해서 슈퍼우먼 컴플렉스에 빠지느니(전 그리 될 가능성이 농후하거든요) 결혼하지 않고 실컷 사랑하고 싶다.
동거문화를 좋게 받아들인 것도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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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스니커 스토리

2004/05/02 00:21

'스니커'라는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스니커(sneaker)는 '비열한 사람' 을 말한다. 사실은 스니커즈(sneakers)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스니크(sneak)는 '살금살금 걷는다' 는 뜻이다. 분명히 스니커를 신으면 살금살금 걸을 수가 있다. 틀림없이 처음으로 스니커를 발명한 사람은 친구나 가족에게 수없이 싫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뭐, 뭐야, 자넨가? 뒤에서 살금살금 걸어오니까 깜짝 놀랐잖아" 라든지,
"당신, 앞으로 그 새 신발 좀 신고 다니지 마세요. 깜짝 놀라서 접시를 세 개나 깨먹었다구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니커를 발명한 이는 여간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로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광경을 상상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자세히 조사해 보니까, 스티커는 1872년에 보스턴에 사는 제임스 P.브래들리라고 하는 마구상 주인에 의해서 발명되었다고 한다. 브래들리 씨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 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 같다. 부인이 접시를 깨트리거나 친구에게 핀잔을 받았 다고 하는 기록도 없다. 에디슨이나 라이트 형제에 대한 전기는 상세하게 남아 있는 데, 스티커를 발명한 사람이 이렇게 낮게 평가받고 있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 각한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브래들리 씨는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처음에 고무 말발굽을 발명해서 시 당국에 13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고무 말발굽을 붙인 말이 살금살금 거리를 지나가다가, 앞서가는 노부인의 목덜미를 낼름 핥았기 때문 이다. 노부인은 졸도하고, 브래들리 씨는 경찰에 연행되어가서 벌금형을 받고, 고무 말발굽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브래들리 씨는 단념하지 않고 고무 말발굽의 연구를 계속했고, 그것은 드디어 실험적으로 인디언 토벌군에게 채용되게 되었다. 1868년의 일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기병대가 인디언의 배후로 잠입해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성과는 그다지 바람직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보스턴의 노부인과 수우 족의 전사는 역시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1872년에 브래들리 씨는 "말발굽에 고무 밑창을 댈 수 있다면, 인간의 신발 밑바닥에 고무를 갖다 대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오카모토 다로적 전환을 이룩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브래들리 식 고무 밑창 신발' 이 탄생한 것이다.

'브래들리 식 고무 밑창 신발' 은 어느 사이엔가 스니커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악의에 찬 이름이 붙여진 것을 보면, 보수적이고 온건한 보스턴의 시민들은 브래들리 씨 와 그 발명품에 대해서 상당히 짜증스러워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1982년이 되었다.

나는 스니커를 대단히 좋아한다. 1년 중 350일은 스니커를 신고 생활하고 있다. 덱 슈즈, 로컷, 바스켓볼 모델이나 빨간색, 파란색, 흰색 스니커나, 콤파스, 케즈 등 여러 가지 스니커를 가지고 있다. 스니커를 신고 거리를 걷다 보면, 나이를 먹는 것 따 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때때로 어떤 사람이 스니커를 발명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를 생각한 끝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거짓말을 생각해 냈다.
전부 거짓말이다. 정말 미안하다.

하루키 수필


2004/05/02 00:21 2004/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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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2004/05/02 00:20

여자아이가 남자아이한테 묻는다.
"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해?"
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한밤의 기적 소리만큼" 이라고 대답한다.
소녀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린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느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 아마 두시나 세시, 그쯤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몇 시인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그것은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알겠니. 상상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리라고는 아무것도 안 들려. 시계바늘이 시간을 새기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아. --- 시계가 멈춰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한테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장소로부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고 격리되어 있다고 느껴. 내가,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내가 그대로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모를거야. 그건 마치 두꺼운 철상자에 갇혀서,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야. 기압 때문에 심장이 아파서, 그대로 찍히고 두 조각으로 갈라져버릴 것 같은 ---- 그런 느낌 알 수 있어?"

소녀는 끄덕인다. 아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말을 계속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장 괴로운 일 중의 하나일 거야. 정말이지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그런 느낌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죽고 싶다는 그런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상자 안의 공기가 희박해져서 정말로 죽어버릴 거야. 이건 비유 같은 게 아니야. 진짜 일이라고. 그것이 한밤중에 외톨이로 잠이 깬다는 것의 의미라고 그것도 알 수 있겠어?"

소녀는 다시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소년은 잠시 사이를 둔다.

"그렇지만 그대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먼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도 선로 같은 것이 있는지, 나도 몰라. 그만큼 멀리 들리거든. 들릴 듯 말 듯하다고나 할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의 기적소리 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서 내 심장은 아파하기를 멈춰. 시계 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을 향해서 천천히 떠올라. 그것은 모두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렇게 작은 기적 소리 덕분 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거기에서 소년의 짧은 이야기는 끝난다.


하루키 단편


2004/05/02 00:20 2004/05/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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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처럼님 힘내세요

悔恨의 章 회한의 장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었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 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겐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 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하늘처럼 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가끔은 이렇게 세상에 대한 사표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무 때문도 보지 않고, 아무것에게도 보이지 않는...
비겁해진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수록, 한번 비겁해진다는 것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듯해요.
내 자신과의 싸움은 잠시 보류하고 한번....



2004/04/27 18:53 2004/04/2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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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flow, let it go, let it be

2004/04/16 00:17

우발적인 여행.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하루만 월차 휴가를 낼 수 있느냐고. 어머니와 함께 어디를 가 줄 수 있느냐고.
집 앞에서 택시를 탔고, 겨우 5분만에 종로 5가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이제 내리자고 했다.
어머니는 한의원으로 들어가자고 하셨고, 나는 어머니가 커다란 병을 얻은 줄로 알았다.
한의사 선생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 애 좀 봐 주세요."
"엄마, 미쳤어요?!"

어머니는 단호했다.

"넌 아파. 가만히 있어."

한의사 선생은 내 팔목을 잡았다.
진맥을 마친 한의사 선생의 첫마디는 내 몸 안의 피를 완전히 거꾸로 돌게 만들었다.

"젊은 친구가 무슨 큰 충격을 받은 일 있었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머리로는 다 잊은 줄로 알고 있었는데, 내 몸은 2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탯줄이 이미 30년 전에 끊어졌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내 몸을 나보다 더 민감하게 진단하고 있었다.
양심적인 한의사 선생이 보약은 필요없다며 지어 준 한약을 먹으면 한없이 졸음이 왔다.
그 졸음에서 달아나기 위해 나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직장을 얻기 전, 잠시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13년을 함께 붙어다니다시피 했던 사람과 한번도 여행을 함께 떠나지 못했다면 믿겠는가?
인생은 그렇다.
세월은 언제나 아주 넉넉히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다 어느 날 아주 간단하게 세월은 우리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세월이 사라진 그 허공에 무수한 약속들이 날아다닌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어. 너도? 우리 가자. 다 때려치우고 가는 거야.
소년들의 약속…….

약속은 지켜졌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그 곳으로 떠났고, 그는 내 꿈에 실려 그곳으로 왔다.
인도에서의 첫 밤.
800원짜리 호텔 파라곤 4인용 방에서 잠자던 여행자들은 한밤중 내 비명소리에 놀라 일어나야 했고, 다음 날 아침 내게 물었다.

"어젯밤 악몽 꿨니?"

나는 지금도 그 꿈의 일부분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 사촌누이가 세상을 떠나고 내 꿈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내게 해 주신 말씀을 기억한다.
정 떼느라고 그렇게 무섭게 꿈에 나온단다.

홀로 흘러다녔다.
캘커타, 샨티니케탄, 다질링, 카트만두, 포카라, 보드가야……
어디에 가든 언제나 동행을 만났다.
동행. 同行. 같은 길을 가는 사람.
길이 언제까지고 같을 수는 없다.
첫여행이었으므로, 길에서 헤어지는 일에 아직 길이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
아, 헤어지는 일은 언제나 참 힘이 들었다.
이등칸 밤기차의 침대 위에서, 장거리 버스의 딱딱한 의자 위에서 나는 홀로 흔들리며 흘렀다.
흐르다가 큰 강물에 합류했다.
갠지스 또는 강가(Ganga), 바라나시 또는 베나레스(Benares).

아침에 눈을 뜨면 강물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방이었다.
자명종 없이도 언제나 새벽 해가 뜨기 전 눈이 먼저 떠졌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는 일,
어린 아이들이 젓는 쪽배를 타고 강물 따라 흐르다가 거슬러 올라오는 일,
강둑에 앉아 지는 해를 보는 일…….

매일 꽃을 샀다.
매일 꽃을 강물에 던졌다.
죽은 개의 시체가 흐르던 강.
그 강물 위에 언제나 무수한 꽃들이 흘렀다.

날이 흐렸다.
강물에 지는 석양 또한 오렌지빛이었다.
다시 강가에 앉았다.
다시 그가 내 옆에 따라와 앉았다.
어느 새 사진 속의 모습으로만 기억나는 얼굴.
울고 싶었던가?
그럴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할 수 있다.
그 저물녁의 평화가 얼마나 큰 슬픔인가를 자꾸 되씹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다가 잠시 휘청 흔들렸다.
그대로 쓰러져 버리기를 원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세상과 내가 무게 중심을 모두 잃어 허공에 둥실 띄워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누구에겐가 기대고 싶었다.
평화 속에 홀로 있는 외로움.
아이들은 1루피를 달라고 외쳐댔고, 마약상들은 파리처럼 내 귓전에 하시시, 마리화나를 외쳐댔다.
그럼에도 그 평화는 깨지지 않았다.
평화가 크고 깊으면 슬픔이 된다.

게스트하우스의 계단 왼편 문설주에 룽기(인도 남자들이 입는 스커트)를 입은 금발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하도 평화로워서 잠시 오른쪽 문설주에 기대 앉았다.
눈인사를 나누고, 그가 물었다.

"티벳에서 왔니?"
"아니, 한국에서"
"인도에 왜 왔니?"
";몰라, 그저 오고 싶었어"

그는 다시 강물로 얼굴을 돌렸다.
나도 강물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입에서 세 음절의 단어가 빠져 나와 내 귀로 흘러왔다.
옴 샨티, 옴 샨티…… 샨티, 평화.
최면처럼 내 입에서 느리게 말들이 빠져 나왔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죽음이 평화가 되고, 평화가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언제나 평화는 가볍고 밝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어.
이렇게 무겁고 어두운 평화는 무엇이지?"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며 이야기했고, 그도 강물에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Let it flow, let it go, let it be. "

오렌지빛 석양이 스러지고 어두워졌을 때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고 헤어졌다.
렛 잇 플로우, 렛 잇 고우, 렛 잇 비…….
어두운 밤, 강물 위에 촛불 몇 개가 흔들리며 흘러갔다.

다섯 번 강물 위에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았다.
해가 뜰 때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네 번째 새벽녘 그가 다시 내 꿈으로 왔었다.
비명을 지를 필요는 없었다.
베나레스에서 내 꿈으로 들어온 그는 그저 편히 잠시 머물다가 떠났다.
베란다에 올라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는 이미 떠난 그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대를 위해 꽃 한 줄 바친 것을 어머니 갠지스에 감사하나니,
친구여, 그대가 항상 뒤집어 쓰고 다니던 절망을 이제는 버린 후 이기를,
오직 평화만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다시 이 지옥에 태어날 때에는 그저 행복한 젊은 부부의 아이로 태어나기를,
안녕, 친구여. 내일 나는 베나레스를 떠날 것이네.

평화가 두려워 달아난다면 믿겠는가?
나는 평화를 보았다.
평화의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힘의 실체를 보았다.
사람을 취하게 하고, 모든 욕망을 희석시키고, 종내는 저 갠지스처럼 흐르지 않는 듯이 흐르게 하고야 말 힘.
위대한 허무.

평화가 있는 곳에 곧 허무가 함께 하느니.
그대의 삶이 온통 평화로 가득해지는 날, 곧 그대의 죽음일 터이니…….

베나레스를 떠나던 날, 다시 한번 새벽 흐르는 강물에 몸을 띄웠다.
어린 아이가 젓는 쪽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받으며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

렛 잇 플로우, 렛 잇 고우, 렛 잇 비.

인도로 돌아갈 때마다 베나레스로 돌아갈 수 있기를 꿈꾸었다.
세 번을 인도로 돌아갔지만 베나레스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내 발길이 그렇게 흘렀을 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내 몫으로는 충분한 평화를 얻어 왔다.
인생은 강물이다.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또는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강물.
그 강물에서 잠시 만날 뿐이다.
모든 삶은 결국 강물에 실려 가는 여행이다.
강물은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꽃도, 어느 촛불도 머물지 않는다.
흐르다가 보면 언젠가 그 강물에 다시 합쳐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내게 눈길을 돌리지 않고, 강물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흐르게 하고, 떠나게 하고,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 사람.
어쩌면 이미 수천 번 그 사람을 만났던 것인지 모른다.

- 조병준 / 렛 잇 플로우, 렛 잇 고우, 렛 잇 비


2004/04/16 00:17 2004/04/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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