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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독일어: Hannah Arendt, 표준어: 해나 아렌트, 1906년 10월 14일 ~ 1975년 12월 4일)
- 독일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 정치 이론가
- 종종 정치 철학자로 평가되지만, 아렌트 자신은 항상 철학은 "단독자인 인간"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유로 그러한 호칭을 거절했다. 아렌트는 대신에 자신을 정치 이론가로 묘사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업적이“‘한 인간’이 아닌 ‘인류’가 지구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공헌은 20세기와 21세기 정치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아렌트와 가장 밀접하게 동일시되는 사상의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토크빌에 이르는 고전적 시민공화주의(Classical republicanism)이다. 그의 정치 개념은 시민 참여와 집단 숙의를 강조하는 적극적인 시민 정신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전체주의의 기원'(1951)을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인간의 조건'(1958)으로 정치철학자의 입지를 굳혔다.
그 후로도 '과거와 미래 사이'(1961), '혁명론'(1963) 등 많은 글을 발표했으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담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유, 의지, 판단을 다룬 '정신의 삶'중 '판단' 원고를 집필하던 1975년 12월 4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 사유하기를 멈추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 악의 평범성
- 《뉴요커》에 낸 아이히만 공판에 대한 보고서(나중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발전하게 된다)에서
악이 근본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진부함(banality;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이나 비(非)활동이 낳을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다수 의견에 따르려 하는 경향)의 작용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 아렌트는 순전한 무사유,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는 철저히 파편화되고 소외된 개인들과 그들의 수동적이고 마치 죽어 있는 듯하며 ‘생각없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수용하는 생활에 던져진 강렬한 메시지로 작용하였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3
- 1960년,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 모사드가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 겸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하였다. 그 후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1961년 4월 11일 공개재판이 열렸다.
-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듣게 된 직후 재판의 직접 참관을 원했던 그는 <더 뉴요커>의 특별 취재원으로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된다. 취재 결과는 ‘전반적인 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제목으로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기고되었으며, 이후 후기와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더해져 도서로 발간되기에 이른다.
- 이 책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주관했던 만큼 매우 사악하고 악마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아주 친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공개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그동안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본인은 그저 자신의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일관했다. 아이히만과 같은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생각하던 중, 한나 아렌트가 떠올린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아이히만과 같은 선한 사람들이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여기며 행하는 일들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자신의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악은 언제나 생겨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고문을 경험한 자에게 이 세상은 더 이상 편하지 않다”라고 말한 아우슈비츠 생존자 장 아메리는 자신의 1966년작 《죄와 속죄의 저편》 을 통해 아렌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인류의 적에 대해 들어서만 알 뿐이고 오로지 유리로 된 새장을 통해서만 그를 보았을 뿐이다.”
- 이 책이 담고 있는 사례, 즉 ‘아이히만’의 본모습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최근에 논쟁이 일어난 시점은 2014년이다. 논쟁에 불을 지핀 건 독일 철학자 베티나 슈탄네트의 저서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이었다. 슈탄네트는 나치 패전 뒤 10년간 신분을 속이며 아르헨티나에서 살았던 아이히만이 쓴 메모와 글 수만 건을 분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아이히만은 철저히 광신적인 반유대주의자로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아이히만이 재판 당시 아둔한 하급 공무원처럼 굴었던 것은 형을 낮추기 위한 법정 전략에 불과했다고 말이다. 심지어 슈탄네트는 아렌트가 법정 전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아이히만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는 다소 모욕 섞인 설명까지 덧붙여가며 자신의 입장을 서술했다.
- 지몬 비젠탈은 1988년 출판한 책 《Justice, Not Vengeance》에서 "세계는 이제 "책상 살인자"의 개념을 이해한다. 우리는 수백만 명을 죽이기 위해, 광신적이고, 가학적이거나, 정신병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무를 완수하려는 충성스러운 추종자면 충분하다."라고 썼다. "작은 아이히만"이라는 개념은 조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 관료들을 경멸하는 개념이 되었다.
- 베티나 스탱네스(Bettina Stangneth)는 2011년 자신의 책 《Eichmann Before Jerusalem》에서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윌리엄 사센과 인터뷰한 내용을 근거하여, 아이히만이 이데올리기적으로 동기 부여된 반유대주의자이자, 평생 나치에 헌신한 당원이었으며, 재판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관료였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Christopher Browning), 데보라 립스타트(Deborah Lipstadt), 야콥 로조윅(Yaacov Lozowick)과 데이비드 새자라니(David Cesarani) 등의 저명한 역사가들도 스탱네스의 주장에 동의했고, 이는 한나 아렌트가 믿었던 (아이히만이) 생각이 없는 관료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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