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량의 그 여인은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어 말을 못하게 되었나의 의문이 풀리게 된다.
#. Storyline
- Follow-up to 2014's The Admiral: Roaring Currents, which explores the historic Battle of Hansan Island.
- In 1592, Admiral Yi Sun-sin and his fleet face off against the might of the invading Japanese navy and its formidable warships. As the Korean forces fall into crisis, the admiral resorts to using his secret weapon, the turtle ship, in order to change the tide of this epic battle at sea.
#. 촬영과 편집이 굉장히 멋진 작품. 스토리텔링은 별로 없으나 속도감 있는 진행으로 긴장감을 유지시켜서 좋았다. 마지막 호랑이 CG는 실망.
#. 우리나라는 치욕의 역사가 참으로 많다. 치욕적인 패배는 일제강점기 전에도 있었다. 북방정책을 펼치던 광해군을 밀어내고 왕권을 잡은 인조의 세력들은 지네들끼리만 잘 살아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바로 이때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 역사를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실망스런 과거의 역사를 또 떠올리게 만들었다. 인조의 아들은 모두 인질로 청으로 넘겨졌었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역사공부를 멀리한지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두 이성계 장군의 후손들이면 무관들에게 소홀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정조이후로는 학자도 별로 배출하지 못했으면서 허세만 부리는 먹물쟁이들때문에 나라가 그 꼴이 되었다. 성품이 곧은 인물들은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그 누가 강직한 인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후손인들 그렇게 살아갈까.
#. 제작정보
최종병기 활 War of the Arrows 2011 KR ★★★
액션, 전쟁 / 한국 / 122분 / 개봉 2011.08.10 감독: 김한민 / 배우: 박해일(남이), 류승룡(쥬신타), 김무열(서군), 문채원(자인) 2011-09-24 CGV불광
#. 전쟁의 공포로 참호에 있던 한 병사가 이리저리 총구를 날리다 결국은 자살을 하자 그를 보고있던 다른 병사가 외치는 이 한마디. 바로 그것이, 625 전쟁이었다. 사상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알지도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그냥 남쪽에 살고 북쪽에 산다는 이유로 참여한 전쟁. 그 전쟁의 휘둘림속에 실제 있었을 이야기.
#. 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떠나기 바쁘던 사람들. 국군의 소집령에 얼떨결에 앞으로 떠밀려서 참여하게 된 18-30살의 남자들. 그들을 속수무책으로 보내야만 했던 여인들. 병약하고 어린 동생이라도 살리려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형. 형의 그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이 죽겠다는 동생... 형. 난 이게 꿈인것같아. 내일 아침에 꿈에서 깨면, 난 형에게 이런꿈을 꾸었노라고 이야기 하겠지. 옆에서 영자누나는 아침을 하느라 분주할거고. 그래 이건 꿈일꺼야. 가슴아프게 내뱉는 동생. 그런 동생이 안쓰러운 형...
#. 계속된 전쟁속에서 동생을 제대시키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형은 갈 수록 잔악무도해지고, 그런 형을 지켜보는 동생은 형의 진심을 알길없이 갈 수록 형에 대한 증오가 깊어진다.
#. 동생이 갖고 싶어했던 만년필을 겉옷주머니에 간직한채 동생의 후퇴를 돕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내던지는 형의 가족애.
#. 형. 돌아와서 전해준다고 했잖아. 금방 온다고 해놓고. 50년이나 기다리게 해놓고. 이제서야 이런 모습으로 ...
#. 한국전쟁의 참상. 그것은 민주주의의 쟁취도 타도괴도도 아닌, 골육상잔의 비극인 것이다.
#. 주연, 조연배우들의 연기는 약간의 CG의 미숙함을 커버해주고도 남는다. 다만 두 주연배우를 지나치게 부각시키어 전쟁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지 않음이 아쉽다.
#.
솔직히 이 시점에서 북에 관련된 영화가 두편이 개봉이 된 것에 대한 의문점은 갖고 있다. 김추기경이 언급했듯이, 젊은이들이 미국을 멀리하고 북한을 가깝게 여김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볼때 이 영화는 이런 감정을 줄 것 같다. ' 그래 우리가 이래서 미국에게 고마워해야 하는거야. 그때 미국이 없었어봐. 우린 이미 공산당에게 먹혔어' ' 아니 우리가 언제적부터 북한을 불쌍히 여겨왔다고 요즘 이 난리들인거야.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야 ' 하며 다시한 번 그 시절을 떠올릴 어른들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
#. 참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다. 당시의 전쟁은 이미 그 무엇도 아닌 -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 - 적을 무찌르는 것 뿐이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하는 분위기.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적은 나를 죽이려드는 총든자이고 그렇기때문에 반듯이 죽여야 한다. 는 감정. 그런 극한의 대립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죽기때문에 저들을 죽게 만드는 그런 감정은 쉽게 오는 감정은 아니다. 절박함과 극박함. 왜 그러했을까. 일제강점기의 서러움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또한 우리의 분단은 냉전시대의 부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안타까운 형제끼리의 싸움. 50년이상의 분단의 세월... 현재까지도 전쟁당시의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 화두. 우리가 왜 전쟁을 했는가. 북한은 진정 우리의 주적인가.
written on 2004.01.19
#. 제작정보
태극기 휘날리며 TaeGukGi: Brotherhood Of War 2004 KR ★★★ 전쟁, 드라마, 액션, 분단 / 한국 / 145분 / 2004 .02.05 개봉 감독 : 강제규 / 출연배우 : 장동건 원빈 공형진 이은주 2004.02.03 역삼동 메가박스
묘호는 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그 묘실을 가리키기 위하여 조정에서 왕의 사후 그 왕의 치적에 걸맞게 중신회의에서 정하였다. 조정에서 묘호를 정할 때에는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원칙에 입각하여 왕이 재위 기간에 국가에 공 功(나라를 세웠거나 변란에서 백성을 구한 커다란 업적이 있는)이 많으면 "조(祖)"를, 국가에 덕 德(앞선 왕의 치적을 이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문물을 융성하게 한)을 많이 쌓았으면 "종(宗)"을 붙이도록 하였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 이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거나 신하들이 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지어 올리는 시호와 존호도 있다. 예를 들면 이성계의 정식 호칭은 "태조 강헌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이다. 이 중 태조는 묘호이고 강헌대왕은 시호 나머지는 존호인 셈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왕건은 태조라고 불리웠고 몽고 간섭기에는 충렬왕 등"충"자를 앞에 붙였는데 이는 몽고에 충성을 다했다는 표시로 부끄러운 역사의 일면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정한 묘호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선조의 경우, 처음 묘호가 선종이었으나 국난(임진왜란) 극복 등 커다란 공이 있다고 일부 신하들이 주장해 선조로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광해군이나 연산군처럼 "군"으로 불리는 왕들은 어떻게 붙여진 이름일까.
군이라는 것은 원래 왕자들이나 왕의 형제, 또는 종친부나 공신에게 주어지던 호칭이다. 광해군과 연산군의 경우는 재위 기간 중 국가와 민생에 커다란 해를 끼친 폭군으로서 폐위되었기 때문에 왕으로 대접하지 않고 군(결국 왕이 되기 전의 왕자 위치로 돌아간 것)으로 봉해진 것이다. 따라서 역대 왕과 왕비, 추존왕(追尊王 :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죽은 뒤에 묘호가 내려진 왕)과 왕비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도 광해군과 연산군의 신위는 찾아 볼 수 없다.
그 동안 논란이 되어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미 양국 외무부가 합의에 이르렀다. 지난 1월 19일 워싱톤에서 개최된 제 1회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ed Partnership)’에서 지난 3년간 논란이 되어왔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하여 “한국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동북아지역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합의하였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군사적 전략의 변화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성하여 유연성의 극대화를 추구해 왔다. 주한미군 역시 이러한 세계전략에서 예외일 수 없었으며, 이를 위해 주한미군의 재정비를 추진해 왔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애매모호한데, 주한미군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한국내에서 처리할 수도 있다는 내용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당시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되겠다. (링크)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므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화두이다.
당시 이 글에는 이 합의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화두인 전시작전권에 대한 문제도 다뤘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당시 정부를 비난하던 입장은 한국이 전시상태라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물론 전시상태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쟁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미국의 국익에 따라 주한 미군이 언제 어느 곳이든지 가도 좋다는 것인데 당장 내일 전쟁이 일어나는데 주한미군이 외부로 나가 있다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전시작전권이 없는 상태에서 큰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작권을 환수해야 하는 것이다.
전시작전권이란 전쟁 발생시 군대의 작전을 총괄 지휘하고 통제하는 권한을 말한다.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의 전시, 평시 작전권이 유엔군(현재는 한미연합사령부)에 이양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은 군대에 대한 작전권이 없는 주권국가로써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된다. 이후 1994년 12월 1일 0시를 기해, 한국은 평시작전권을 44년 만에 미군으로부터 환수받았다. 2005년 10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은 계룡대에서 열린 제5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나는 그동안 자주국방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것은 자주독립국가가 갖추어야 할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후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스스로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이라며 자주국방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밝혔다. 이후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권 전환을 두고 여러차례 대화를 하였고 2010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하는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는 국군에 대한 사항이고 해군이나 공군의 전시작전권은 계속해서 미군이 갖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대한민국 군대에 없다는 게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은 일본 자위대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에서는 군대를 가질 수 없는데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의 형식을 띤 방위대가 있다. 심지어 이 일본 자위대에 대한 전시 및 평시 작전통제권을 일본 정부가 갖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나라만이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지 못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아무리 당신이 미군을 사랑하고 미국을 사랑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년 3·1절을 맞이하여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시인의 감격을 되살리면서, 광복된 조국의 그날을 열정적으로 노래한 민족항일기의 대표적인 저항시.. 가끔 심훈시인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몰래 벅차오를 때가 있다. 같이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우리가 제대로 된 광복을 만들어냈더라면, 적어도 친일의 잔존만이라도 제거했더라면 독립운동을 했던 명사들 앞에 부끄럽지는 않을텐데..
우리에겐 늘 이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중국에 정치적인 지배를 받아왔던 시절에도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도 미군에 의해 실질적인 통치를 받던 시절에도. 늘 대한민국보단 지배세력의 도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것이 문제인 것은, 그들이 그러하다는 것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살아오므로써 경제적인 권력적인 이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애국지사의 자손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기 힘들고, 지배세력 만세를 외치던 이들의 자손들은 대대손손 잘 먹고 살고 있으니.. 한 20년만 흐르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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