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즐기기 위해 민중들이 극장에 몰려갔다'라는 사실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활약했던 시대는 사람들도 활기넘치는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이미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다양한 문화가 꽃핀 엘리자베스 시대를 「명랑한 잉글랜드」 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는 전쟁, 또 전쟁인 시대였다.
‖ 여왕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그녀는 스코틀랜드로 파병해 내정에 간섭한다. 그 당시 스코틀랜드에는 동맹국 프랑스의 군대가 주둔해 있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대립을 이용하고,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역성을 든 것이다. 그 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으로 종교전쟁의 혼란에 빠진 프랑스에도 개입해, 프로테스탄트 측에 원군을 보낸다. 프로테스탄트의 승리로 끝나면 설령 혼란이 길어지고 체제가 붙안정해진다 해도 잉글랜드에 대한 위험은 사라지니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그 당시 유럽에선 프랑스와 스페인, 양 대국이 패권을 경쟁하고 있었는데 프랑스가 혼란에 빠지자 스페인과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 가톨릭 세력의 맹주를 자처하는 스페인과 프로테스탄트인 잉글랜드가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긴 힘들었다. 양국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등이 이끄는 사략선이 미대륙에서 은을 싣고 돌아오는 스페인 함대를 습격하고, 그걸 여왕이 묵인하자 스페인은 분노가 쌓여갔다. 사략(私掠)이란 외국 함선을 공격해 화물을 빼앗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니, 요컨대 여왕이 공인한 해적인 셈이다. 더욱이 스페인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네덜란드에서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여왕은 이를 군사 지원한다.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의 주요 산업이었던 모직물의 중요한 거래처였기 때문에 경제 이익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세력을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네덜란드를 무대로 한 스페인과의 대립이 전면전쟁으로 발전하여 끝내 무적함대의 습격을 초래한다.
‖ 스페인과의 전쟁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에 쓰이는 전비(戰費)가 재정을 압박하고 또 다시 공격해올지도 모르는 스페인의 위협은 사회에 불안을 안겨주어 엘리자베스 여왕의 말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사람들이 감동했을 때 잉글랜드는 전시 중이었고 「명랑」과는 정반대인 정세었다. 전쟁의 불안감을 한때나마 누그러트리기 위해 사람들은 극장을 찾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런던을 떠나 당분간 논서치 궁전에 체류합니다. 하지만 내일부터 여왕 폐하와 시녀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살았던 성으로 작품 속에는 논서치 궁전이나 화이트홀 궁전, 런던 탑 등이 등장한다.
어느 것이 여왕의 본거지일까?
‖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러 개의 성을 이동하며 거주했다. 이것은 중세 이후의 관습이었다. 중심이 되는 거성에서 전국을 지배하는 것은 당시의 통치 조직으로는 힘들었기 때문에 국왕이 직접 각지로 나가 문제를 심판하고, 불온한 움직임을 억제해야 했다. 성은 단지 평소의 거처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의 방위 거점이자 주변 지역을 엄중히 관리하는 전선기지이기도 해서 국왕의 권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논서치 궁전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헨리 8세가 지은 성인데, 그의 라이벌이었던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지은 샹보르 성(현재는 세계유산)을 의식하며 『그 이상』을 지향한 것이었다. (논서치란 '견줄 것이 없다'라는 뜻. 안타깝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 성이 여러 개 있고, 국왕이 이동한다는 것은 궁정도 같이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정 관료나 시녀, 호위 병사부터 의상 담당이며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여왕의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수백 필의 말에 짐을 신고 이동하는 것이다. 이 이동도 여왕에게는 중요한 퍼포먼스의 기회였다. 사람들에게 길게 이어지는 호화로운 행렬을 보여 주는 것이 국왕의 권위를 높이는 것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렬이 끝날 때까지 길을 횡단할 수 없기 때문에 갈 길이 급한 사람들에겐 민폐가 따로 없었다.
‖ 영국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왕은 지배 지역을 이동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그 관례를 멈추고 한 곳에 머문 것이 엘리자베스의 라이벌,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다. 중세 이후의 고성은 군사 거점으로서의 면모를 중시하며 지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전체적으로 관리는 잘 되어있지만, 결코 살기 편하다고는 볼 순 없었다. 펠리페는 자신이 지은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에 머물면서, 거기서 지령을 내리며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이러한 정착 패턴은 17세기에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조영하면서 유럽 전역 왕후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모범이 되었다. 그 모델을 따르지 않은 것이 영국이었다.
‖ 지금도 여전히 영국 여왕은 여기저기 성을 이동하고 있다. 여왕은 버킹엄 궁전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 또한 전통의 나라 영국다운 일이다.
‖ 웨스트민스터는 사원(에비)이나 국회의사당이 있어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장소다. 지금은 런던의 일부처럼 여겨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웨스트민스터는 런던과는 다른 도시로 셰익스피어의 시대, 두 도시 사이에는 논과 발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 해도 매우 가까위서 왕래는 힘들지 않았고, 궁전도 지어져 있었다. 현재의 국회의사당도 정식으론 『웨스트민스터 궁전』이고, 궁전을 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웨스트민스터라고 하면 11세기에 건축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역대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수많은 국왕의 묘소가 있는 왕실과 관련된 교회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이 교회에 매장되어 있다. 국왕의 직속 성당이라 해도 좋을 만큼 격식 있는 교회라, 셰이크 일행이 처음 웨스트민스터로 오라는 말에 놀라고 긴장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 그러나 실제로 셰이크 일행이 여왕과 대면한 것은 세인트 마가렛 교회. 웨스트민스터 사원 부지 안에 있는 교회다. 원래 수도원이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지역민들이 모이기 위한 교회가 아니고, 실제 지역 교회로 사용된 것은 세인트 마가렛 교회였다. 현재의 성당은 1523년에 제건된 것이고. 종교개혁이 시작되기 전, 가톨릭 시대에 성당으로 지어진 런던의 마지막 교회였다. 셰익스페어가 극작가를 은퇴한 이름해(1614년). 세인트 마거릿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즉 의회를 위한 교회가 되었다. 이 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의원들이 예배하러 찾아오는 것도 이 교회다. 당연히 귀족이나 상류계급, 국회의원 등과도 관련이 깊어 시인인 밀턴과 처칠도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사실, 웨스트민스터에는 한 곳 더 중요한 교회가 있다. 바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이다. 앞에서 말한 두 교회와는 좀 떨어져 있지만, 비잔틴 양식의 붉은 벽돌에 하얀 줄무늬가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영국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다. 다만, 셰익스페어는 이 교회를 본 적이 없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이 건축되기 시작한 것은 긴 고난의 시대를 뛰어넘어 비로소 가톨릭 신앙이 허용된 후 19세기 말의 일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자금난 때문에 여전히 미완성인 부분이 남아있다.
"잉글랜드의 반격이 시작되니까··· 잔 다르크는 마력을 잃고"
잔 다르크가 무대를 누비며 잉글랜드 군을 농락한다. 셰익스피어의 출세작 「헨리 6세」의 볼거리다. 이 배경이 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바로 「백년 전쟁」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전쟁을 무대로 「헨리 5세」라는 명작도 썼다.
‖ 이 전쟁의 발단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모친이 프랑스 왕녀였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이야말로 프랑스의 정통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하고 나서며 비롯되었다. 모계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와의 사이에서 싸움이 시작되고 중간에 휴전을 하면서 말 그대로 100년이 넘는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의 원인은 왕위 계승권 다툼뿐분만 아니라,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 영내에 갖고 있던 영지를 둘러산 싸움, 플랑드르(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의 모직물 산업을 둘러싼 이권 대립과 양국 안에서의 내분 등 복잡한 것이었다.
‖ 싸움은 좀처럼 결착이 나지 않았는데, 전쟁 후반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압도적인 승리를 하며 화친 조약이 맺어진다. 프랑스 왕의 딸이 헨리에게 시집오고, 장차 태어날 자식들이 양국의 왕이 되기로 정해진다. 그 자식이 바로 헨리 6세다. 참고로, 이 프랑스 왕녀가 훗날 재혼한 상대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선조에 해당하는 오언 튜더 즉, 엘리자베스 여왕은 프랑스 왕가의 혈통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영국이 승리한 상황을 한 번에 바꿔놓은 것이 잔 다르크다. 화친을 반대하던 왕태자를 지지하며, 함락 직전이었던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열세를 뒤집었다. 잔은 붙잡혀 처형당했지만, 그 후에도 형세는 바뀌지 않아 잉글랜드군은 프랑스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잔 다르크의 묘사 방식.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마녀로 그렸다. 그녀는 당시 영국인들에게, 영국을 패배로 몰아넣은 끔찍한 적이었다. 본래 프랑스군에게 질리 없는 잉글랜드가 패배한 것은 악마의 초자연적인 힘 때문인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 사실, 잔은 프랑스에서도 오를레앙 외에 다른 곳에선 그다지 유명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존재를 부각시킨 것이 나플레옹이다. 영국을 비롯한 대외 전쟁 속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치켜세운 것이다.
‖ 백년 전쟁의 결과, 영국 국왕과 귀족 등은 프랑스에 갖고 있던 영토를 거의 잃게 되었다. 그 반면, 그 전까지는 애매했던 「국가」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연극 관객들이 무대 위 잉글랜드 군을 진심으로 응원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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