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갔다

2004/05/07 00:23

" 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 왔어 "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거리고,
그 그늘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갔다.

- 나희덕

가끔, 아니 어쩌면 항상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아버리곤 한다

지난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그리워 하고 있었다고. 사과해야 했었다고. 그를 만나러 나갔어야 했다고
그렇게 등을 보이는게 아니었다고 그러는게 아니었다고.

목련그늘이 좋아, 우리집에 놀러와... 라고 얘기하는 그의 집에
그가 죽은 후 조문을 가는 심정
그 심정을 생각해본다.

그토록 뒤늦은 후회가 우리 삶에는 없었으면
그대는 그러지 말았으면...

written by 오정은

한 걸음 뒤에



나는 때를 놓쳐 사랑을 잃은 경험이 두번이나 있다.
늘 한 걸음 뒤에 있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하고
어느샌가 내 마음 깊숙히 들어와 있는 그 사람을 느꼈을 땐
이미 그 사람은 내게서 흠뻑 슬픔을 느낀 뒤였다.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있을 것만 같던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반겨주지 못할 때.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
사인미스는 포수와 투수 사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
우리는 늘 수많은 사인미스를 벌이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2004/05/07 00:23 2004/05/0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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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허술하다

2004/05/02 00:23

힘든가요 내가 짐이 됐나요 마음을 보여줘요
안된대도 아무 상관없어요 내마음만 알아줘요

다른 사람 친한 그댈 미워하는
나의 사랑이 모자랐나요
늘 생각해요

이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 또 없을테니
내게 힘이 돼줘요 난 기다려요 그대 내가 원해요

우는 내가 많이 지겨웠나요
그래요 이해해요
많은 밤이 지나 그대 후회되면
다시 내게로 돌아올테니
다 괜찮아요

이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 또 없을테니
내게 힘이 돼줘요 난 기다려요
그댈 난 원해 그대 사랑해 그대 난 영원해요
 

- 이소라 〃믿음〃


그녀는 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 음반을 발표한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 가사는 늘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의 3집 앨범 타이틀이 "슬픔과 분노에 관한..." 이라는 이유로
이 앨범에 심취에 있을 무렵,
나는 "믿음" 이란 이 노래를 밤마다 틀어놓고
철저하게 깨져버린 "믿음" 의 허술함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그녀가 이 앨범을 발표하기 이전 사귀었던 남자는...
그녀 없이도 너무나 잘 살고 있고,
그녀는 그 없이도 남은 생들을 잘 살아낼 것이다.

"우리 사랑에 있어 어떤 예도 있을 수 없고 어떤 엑서사이즈도 존재하지 않는다" 는 그대의 말은...
봄날은 간다가, 사랑은 간다, 라고 바꿔 불러도 무리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영화를 고집하는 나를 자꾸 말리는 그대는...
믿고 있는가.
사랑의 영원성에 대해서.
믿음은 허술하다.
봄날이 가듯, 사랑은 간다.
여름 한철을 울고 가버리는 매미들처럼,
그 한철을 살기 위해 온 생을 지하에서 인내해야 하는 매미들처럼,
깊은 절망 뒤에 찾아온 사랑이라 해도,
사랑은 간다.

믿음은 허술하다....
그대는 나의 이러한 불안을 아는가.
그래서 흔들리는 나를, 붙잡을 용기가 있는가, 그대는.
written by 오정은

믿음은



2004/05/02 00:23 2004/05/0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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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스니커 스토리

2004/05/02 00:21

'스니커'라는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스니커(sneaker)는 '비열한 사람' 을 말한다. 사실은 스니커즈(sneakers)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스니크(sneak)는 '살금살금 걷는다' 는 뜻이다. 분명히 스니커를 신으면 살금살금 걸을 수가 있다. 틀림없이 처음으로 스니커를 발명한 사람은 친구나 가족에게 수없이 싫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뭐, 뭐야, 자넨가? 뒤에서 살금살금 걸어오니까 깜짝 놀랐잖아" 라든지,
"당신, 앞으로 그 새 신발 좀 신고 다니지 마세요. 깜짝 놀라서 접시를 세 개나 깨먹었다구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니커를 발명한 이는 여간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로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광경을 상상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자세히 조사해 보니까, 스티커는 1872년에 보스턴에 사는 제임스 P.브래들리라고 하는 마구상 주인에 의해서 발명되었다고 한다. 브래들리 씨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 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 같다. 부인이 접시를 깨트리거나 친구에게 핀잔을 받았 다고 하는 기록도 없다. 에디슨이나 라이트 형제에 대한 전기는 상세하게 남아 있는 데, 스티커를 발명한 사람이 이렇게 낮게 평가받고 있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 각한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브래들리 씨는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처음에 고무 말발굽을 발명해서 시 당국에 13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고무 말발굽을 붙인 말이 살금살금 거리를 지나가다가, 앞서가는 노부인의 목덜미를 낼름 핥았기 때문 이다. 노부인은 졸도하고, 브래들리 씨는 경찰에 연행되어가서 벌금형을 받고, 고무 말발굽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브래들리 씨는 단념하지 않고 고무 말발굽의 연구를 계속했고, 그것은 드디어 실험적으로 인디언 토벌군에게 채용되게 되었다. 1868년의 일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기병대가 인디언의 배후로 잠입해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성과는 그다지 바람직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보스턴의 노부인과 수우 족의 전사는 역시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1872년에 브래들리 씨는 "말발굽에 고무 밑창을 댈 수 있다면, 인간의 신발 밑바닥에 고무를 갖다 대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오카모토 다로적 전환을 이룩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브래들리 식 고무 밑창 신발' 이 탄생한 것이다.

'브래들리 식 고무 밑창 신발' 은 어느 사이엔가 스니커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악의에 찬 이름이 붙여진 것을 보면, 보수적이고 온건한 보스턴의 시민들은 브래들리 씨 와 그 발명품에 대해서 상당히 짜증스러워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1982년이 되었다.

나는 스니커를 대단히 좋아한다. 1년 중 350일은 스니커를 신고 생활하고 있다. 덱 슈즈, 로컷, 바스켓볼 모델이나 빨간색, 파란색, 흰색 스니커나, 콤파스, 케즈 등 여러 가지 스니커를 가지고 있다. 스니커를 신고 거리를 걷다 보면, 나이를 먹는 것 따 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때때로 어떤 사람이 스니커를 발명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를 생각한 끝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거짓말을 생각해 냈다.
전부 거짓말이다. 정말 미안하다.

하루키 수필


2004/05/02 00:21 2004/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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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2004/05/02 00:20

여자아이가 남자아이한테 묻는다.
"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해?"
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한밤의 기적 소리만큼" 이라고 대답한다.
소녀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린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느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 아마 두시나 세시, 그쯤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몇 시인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그것은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알겠니. 상상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리라고는 아무것도 안 들려. 시계바늘이 시간을 새기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아. --- 시계가 멈춰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한테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장소로부터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고 격리되어 있다고 느껴. 내가,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내가 그대로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모를거야. 그건 마치 두꺼운 철상자에 갇혀서,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야. 기압 때문에 심장이 아파서, 그대로 찍히고 두 조각으로 갈라져버릴 것 같은 ---- 그런 느낌 알 수 있어?"

소녀는 끄덕인다. 아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말을 계속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장 괴로운 일 중의 하나일 거야. 정말이지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그런 느낌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죽고 싶다는 그런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상자 안의 공기가 희박해져서 정말로 죽어버릴 거야. 이건 비유 같은 게 아니야. 진짜 일이라고. 그것이 한밤중에 외톨이로 잠이 깬다는 것의 의미라고 그것도 알 수 있겠어?"

소녀는 다시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소년은 잠시 사이를 둔다.

"그렇지만 그대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먼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도 선로 같은 것이 있는지, 나도 몰라. 그만큼 멀리 들리거든. 들릴 듯 말 듯하다고나 할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의 기적소리 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서 내 심장은 아파하기를 멈춰. 시계 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을 향해서 천천히 떠올라. 그것은 모두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렇게 작은 기적 소리 덕분 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거기에서 소년의 짧은 이야기는 끝난다.


하루키 단편


2004/05/02 00:20 2004/05/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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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페이지

2004/04/19 20:01

출처 : http://blog.naver.com/11kmps

나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는 구문이 주는 서정성.
누구든 나를 읽을 때는 정독법으로 하여 주십시오. 속독은 언제나 금물입니다.

사랑을 원하는 이들이 하고플법한 이야기.
언제인가부터 느낌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너만은 정독하고 싶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뿐이다.
작가가 말하는 것이 무엇지 확실하게 다가온다.

2004/04/19 20:01 2004/04/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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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flow, let it go, let it be

2004/04/16 00:17

우발적인 여행.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하루만 월차 휴가를 낼 수 있느냐고. 어머니와 함께 어디를 가 줄 수 있느냐고.
집 앞에서 택시를 탔고, 겨우 5분만에 종로 5가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이제 내리자고 했다.
어머니는 한의원으로 들어가자고 하셨고, 나는 어머니가 커다란 병을 얻은 줄로 알았다.
한의사 선생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 애 좀 봐 주세요."
"엄마, 미쳤어요?!"

어머니는 단호했다.

"넌 아파. 가만히 있어."

한의사 선생은 내 팔목을 잡았다.
진맥을 마친 한의사 선생의 첫마디는 내 몸 안의 피를 완전히 거꾸로 돌게 만들었다.

"젊은 친구가 무슨 큰 충격을 받은 일 있었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머리로는 다 잊은 줄로 알고 있었는데, 내 몸은 2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탯줄이 이미 30년 전에 끊어졌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내 몸을 나보다 더 민감하게 진단하고 있었다.
양심적인 한의사 선생이 보약은 필요없다며 지어 준 한약을 먹으면 한없이 졸음이 왔다.
그 졸음에서 달아나기 위해 나는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직장을 얻기 전, 잠시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13년을 함께 붙어다니다시피 했던 사람과 한번도 여행을 함께 떠나지 못했다면 믿겠는가?
인생은 그렇다.
세월은 언제나 아주 넉넉히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다 어느 날 아주 간단하게 세월은 우리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세월이 사라진 그 허공에 무수한 약속들이 날아다닌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어. 너도? 우리 가자. 다 때려치우고 가는 거야.
소년들의 약속…….

약속은 지켜졌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그 곳으로 떠났고, 그는 내 꿈에 실려 그곳으로 왔다.
인도에서의 첫 밤.
800원짜리 호텔 파라곤 4인용 방에서 잠자던 여행자들은 한밤중 내 비명소리에 놀라 일어나야 했고, 다음 날 아침 내게 물었다.

"어젯밤 악몽 꿨니?"

나는 지금도 그 꿈의 일부분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 사촌누이가 세상을 떠나고 내 꿈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내게 해 주신 말씀을 기억한다.
정 떼느라고 그렇게 무섭게 꿈에 나온단다.

홀로 흘러다녔다.
캘커타, 샨티니케탄, 다질링, 카트만두, 포카라, 보드가야……
어디에 가든 언제나 동행을 만났다.
동행. 同行. 같은 길을 가는 사람.
길이 언제까지고 같을 수는 없다.
첫여행이었으므로, 길에서 헤어지는 일에 아직 길이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
아, 헤어지는 일은 언제나 참 힘이 들었다.
이등칸 밤기차의 침대 위에서, 장거리 버스의 딱딱한 의자 위에서 나는 홀로 흔들리며 흘렀다.
흐르다가 큰 강물에 합류했다.
갠지스 또는 강가(Ganga), 바라나시 또는 베나레스(Benares).

아침에 눈을 뜨면 강물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방이었다.
자명종 없이도 언제나 새벽 해가 뜨기 전 눈이 먼저 떠졌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는 일,
어린 아이들이 젓는 쪽배를 타고 강물 따라 흐르다가 거슬러 올라오는 일,
강둑에 앉아 지는 해를 보는 일…….

매일 꽃을 샀다.
매일 꽃을 강물에 던졌다.
죽은 개의 시체가 흐르던 강.
그 강물 위에 언제나 무수한 꽃들이 흘렀다.

날이 흐렸다.
강물에 지는 석양 또한 오렌지빛이었다.
다시 강가에 앉았다.
다시 그가 내 옆에 따라와 앉았다.
어느 새 사진 속의 모습으로만 기억나는 얼굴.
울고 싶었던가?
그럴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할 수 있다.
그 저물녁의 평화가 얼마나 큰 슬픔인가를 자꾸 되씹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다가 잠시 휘청 흔들렸다.
그대로 쓰러져 버리기를 원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세상과 내가 무게 중심을 모두 잃어 허공에 둥실 띄워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누구에겐가 기대고 싶었다.
평화 속에 홀로 있는 외로움.
아이들은 1루피를 달라고 외쳐댔고, 마약상들은 파리처럼 내 귓전에 하시시, 마리화나를 외쳐댔다.
그럼에도 그 평화는 깨지지 않았다.
평화가 크고 깊으면 슬픔이 된다.

게스트하우스의 계단 왼편 문설주에 룽기(인도 남자들이 입는 스커트)를 입은 금발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강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하도 평화로워서 잠시 오른쪽 문설주에 기대 앉았다.
눈인사를 나누고, 그가 물었다.

"티벳에서 왔니?"
"아니, 한국에서"
"인도에 왜 왔니?"
";몰라, 그저 오고 싶었어"

그는 다시 강물로 얼굴을 돌렸다.
나도 강물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입에서 세 음절의 단어가 빠져 나와 내 귀로 흘러왔다.
옴 샨티, 옴 샨티…… 샨티, 평화.
최면처럼 내 입에서 느리게 말들이 빠져 나왔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죽음이 평화가 되고, 평화가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언제나 평화는 가볍고 밝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어.
이렇게 무겁고 어두운 평화는 무엇이지?"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며 이야기했고, 그도 강물에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Let it flow, let it go, let it be. "

오렌지빛 석양이 스러지고 어두워졌을 때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고 헤어졌다.
렛 잇 플로우, 렛 잇 고우, 렛 잇 비…….
어두운 밤, 강물 위에 촛불 몇 개가 흔들리며 흘러갔다.

다섯 번 강물 위에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았다.
해가 뜰 때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네 번째 새벽녘 그가 다시 내 꿈으로 왔었다.
비명을 지를 필요는 없었다.
베나레스에서 내 꿈으로 들어온 그는 그저 편히 잠시 머물다가 떠났다.
베란다에 올라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는 이미 떠난 그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대를 위해 꽃 한 줄 바친 것을 어머니 갠지스에 감사하나니,
친구여, 그대가 항상 뒤집어 쓰고 다니던 절망을 이제는 버린 후 이기를,
오직 평화만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다시 이 지옥에 태어날 때에는 그저 행복한 젊은 부부의 아이로 태어나기를,
안녕, 친구여. 내일 나는 베나레스를 떠날 것이네.

평화가 두려워 달아난다면 믿겠는가?
나는 평화를 보았다.
평화의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힘의 실체를 보았다.
사람을 취하게 하고, 모든 욕망을 희석시키고, 종내는 저 갠지스처럼 흐르지 않는 듯이 흐르게 하고야 말 힘.
위대한 허무.

평화가 있는 곳에 곧 허무가 함께 하느니.
그대의 삶이 온통 평화로 가득해지는 날, 곧 그대의 죽음일 터이니…….

베나레스를 떠나던 날, 다시 한번 새벽 흐르는 강물에 몸을 띄웠다.
어린 아이가 젓는 쪽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받으며 물결을 따라 흘러갔다.

렛 잇 플로우, 렛 잇 고우, 렛 잇 비.

인도로 돌아갈 때마다 베나레스로 돌아갈 수 있기를 꿈꾸었다.
세 번을 인도로 돌아갔지만 베나레스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내 발길이 그렇게 흘렀을 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내 몫으로는 충분한 평화를 얻어 왔다.
인생은 강물이다.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또는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강물.
그 강물에서 잠시 만날 뿐이다.
모든 삶은 결국 강물에 실려 가는 여행이다.
강물은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꽃도, 어느 촛불도 머물지 않는다.
흐르다가 보면 언젠가 그 강물에 다시 합쳐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내게 눈길을 돌리지 않고, 강물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흐르게 하고, 떠나게 하고,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 사람.
어쩌면 이미 수천 번 그 사람을 만났던 것인지 모른다.

- 조병준 / 렛 잇 플로우, 렛 잇 고우, 렛 잇 비


2004/04/16 00:17 2004/04/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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