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소리

2020/04/02 09:02

허공에 울려 퍼지는 이름들
금을 친 운동장이 순식간 풀려난다

때에 길들인 좁은 목구멍
땅따먹기를 팽개친 노을이 달의 치마폭으로 숨는다

누군가 불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속에 집 한 채 짓는 일

별이 없어
목청껏 불러야 할 숲이 없는 나는
혼자 서성이다 숨는 구름이다

머물 집이 없는 목소리는 환청이 강하다
당신 쪽으로 뒤돌아보면, 나뭇잎 흔드는
저녁의 소리뿐

그리움 한 숟가락 퍼 놓은
내가 저문다

- 양현주, 시 '저녁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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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껍데기

2020/04/02 08:57

파도 소리 앞에 귀 하나를 두고 갔습니다.

- 최재훈, 촌철살 詩 '소라 껍데기'

빈 바다를 홀로 듣는 소라 껍데기는
누군가 놓고 간 귀 같습니다.
그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리를 대신 듣고 있는 귀.
지금쯤 바다는 초겨울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을 겁니다.

- 사색의 향기,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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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후렴

2020/04/02 08:55

수면에 비친 구름의 목덜미에 물결 자국이 흥건하다
수심이 깊을수록 푸른 것은
물의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굽이친다는 말은 단층의 은유인 물결이 생긴다는 뜻
물결이 이는 것은 수심이 떨리기 때문이다
소금쟁이가 거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지만
가라앉지 않으려 그들이 얼마나 숨을 참고 견디는지
그때 물의 괄약근은 또 얼마나 정교한 탄력을 유지해야 하는지
물결을 움켜쥔 소금쟁이의 발이 물빛인 것을 보면 안다
자신의 원형을 버려 가며 기꺼이 구겨짐을 견디는 것이
물의 굴절만은 아니겠지만
물에 결이 있는 것은 생의 굴곡에 대한 물의 습작
퇴고에 퇴고를 거쳐도 늘 물의 초고에 머문다
구름 소인이 찍힌 물결은 수심이 첨삭한 추신이다
수압으로 봉인된 수심을 풀면
익사체의 목록은 가라앉고 소문만 물결체로 뜨겠지만
온새미로 인양된 수심의 궤적은 늘 젖어 있어서
물결체를 읽으려고 바람이 온갖 자세로 수면을 들여다본다
잠자리가 꽁지로 수면을 두드릴 때 잠깐씩 열리는 물의 문
잠자리는 물의 경첩,
물을 속독하듯 물수제비가 저수지를 건너간다


- 김겨리, 시 '물의 후렴'



2020/04/02 08:55 2020/04/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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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참외

2020/04/02 08:50

모과는 가을이 되어서야
자신의 이름이
목과(木瓜)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때부터 모과는
덩굴줄기로 뻗어 나가는 노란 참외처럼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바닥 여기저기 흩어진다
떨어져 나간 이름을 찾으려는지
주위를 내내 서성이면서

햇빛도 노랗게 두리번거린다

- 배세복, 시 '나무참외'


목과(木瓜)는 모과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울퉁불퉁 생긴 그것이
겨울 달달한 맛을 주기 위해 한껏 익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을도 노랗게 익어갈 것 같습니다.


- 사색의 향기, 20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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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대답

2020/04/02 08:44

내게 맡겨둔 당신은
아직 무사해요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벌레도 갉아먹지 못한 쓸쓸함 몇 장,
아직 초록이에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십 년 전 그때를
꿈에서도 묻고 싶었지만,

이제 잠자다 깨어나도 오줌 누러 화장실에만 갑니다
어둠 속에 멍하니 앉아있지 않아요

그것이 내 대답입니다

지난해까지
울컥, 수돗물을 틀고 물소리처럼 울던 징글징글한 때가 있었지만

- 마경덕, 시 '늦은 대답'


2020/04/02 08:44 2020/04/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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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와 느낌표

2019/06/14 15:26

가끔은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로 살고 싶다

 
끝이 날카롭게 휘어진 낚싯바늘 보다,
거침없이 쏘아 올려진 로켓처럼 후련했으면 좋겠다
넘어진 방향을 놓친 마음으로 사라진 주변 시야를 따라 총총 걸어가는 사람들 
답이 없는 질문들과 유기된 시간을 지우려 할 때 돌아보면 낯선 얼굴뿐
기록할 수 없는 것들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허름한 변방에 등 기대던 꿈은 마지막 새가 긋고 지나간 흔적 같은 것 
오래 망설이다 다시 밤으로 돌아가는 어제의 서류뭉치 같은 것
욕망은 일종의 그런 것
혼자 남겨진 고립 속에 풀린 태엽을 되감으며
나보다 먼저 타인이 된 내가 물음표 속을 지루하게 걷고 있다
하모니카 케이스처럼 딱딱한 표정, 내일은 느낌표(!!!) 같은 비가 올까
 - 조선의, 시 '물음표와 느낌표'

수없이 질문만 던져놓고 정작 내가 필요한 답만 듣는 표정들.
모두 남에게 돌려놓는 푸념들. 시원하고 통쾌한 감동과 감탄이 그립습니다.

 사색의 향기, 2019-05-14


2019/06/14 15:26 2019/06/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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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늬도 단단하다

2019/06/14 15:22

새벽을 슬레이트 지붕처럼 접어 호숫가로 갔어요

 접혀진 새벽을 펼치자
 오므라든 호수는 단단한 막이 걷히고
 바람이 물무늬를 흔들어놓네요
 - 이승남, 시 '물무늬도 단단하다' 중에서


2019/06/14 15:22 2019/06/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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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말

2019/06/14 15:20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순 있다.
 - 카를 바르트

 그래서 지금이 중요한 것이지요.
과거와 현재가 연관이 되어 미래를 결정짓지만,
지금 이 시간도 곧 과거로 돌아가니
 현재에 충실함, 현재에 다시 시작함은 미래를 결정짓는 일입니다.

정해진 결말이 아닌,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 있는 지금입니다.
 
- 사색의 향기,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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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대로 시작하는 것이

2019/06/14 15:19

미리 실패를 두려워할 것은 없다.

성공하고 못 하고는 하늘에 맡기면 된다.

모든 일은 망설이기보다는 불완전한 대로 시작하는 것이 한걸음 앞서는 것이 된다.
재능 있는 사람이 가끔 무능하게 되는 것은 그 성격이 우유부단한 데에 있다.  
망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

 - 러셀

- 사색의 향기, 2019-04-01


2019/06/14 15:19 2019/06/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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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2019/03/13 20:07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아갈지 알게 된다.

- 괴테


자신을 믿는다는 건
그만큼 확신이 선다는 것,
자신감이 충만해 있다는 겁니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주겠습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가장 확실한 믿음이 생기고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는 것,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 사색의 향기, 2019-03-11



2019/03/13 20:07 2019/03/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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