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

2025/02/09 12:38

내게 기는 재주라도 있다면 굼벵이가 되고 싶다
느릿한 흙으로 만든 집 아래 볏짚을 펼쳐 활짝
당신의 뿌리 근처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뚱뚱한 아랫배로 돋는 날개마저 벗어던지고
한 생을 꼬물꼬물 당신과 함께 살고 싶다
- 채종국, 시 ‘굼벵이’

소박하고도 원초적인 소망입니다.
가장 평안한 소망.
욕심부리지 않고 여유 있게, 누구를 비난하거나 비난받지 않고
나 나름대로 살고 싶은 욕망입니다.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비교당하지 않는 그런 소망 하나 갖고픈 때도 있습니다.

- 사색의 향기, 2025년 2월 4일 (화)


2025/02/09 12:38 2025/02/0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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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달맞이꽃에게

2025/02/09 12:08

너는 나를 보고 핀다 하지만
나는 너를 보고 피는 걸
- 이하, 시 '달, 달맞이꽃에게'


2025/02/09 12:08 2025/02/0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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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

2025/02/09 12:04

침묵은 부패하기 쉬운 질료다. 밀폐된 방안에 너무 오래 괴어 있으면 쉽게 상한다.
오랜 세월 홀로 살아온 노모는 눅눅하고 퀴퀴한 침묵을 체질적으로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늘 물방울이 떨어지도록 수도꼭지를 헐겁게 잠가 놓는다. 똑똑똑똑···.
반향을 남기며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그 소리는 결코 소음이 아니다.
노모가 식성에 맞게 침묵에 가미하는 일종의 향신료다.
- 정희승, 수필 ‘수도꼭지’

물론 떨어진 물방울은 모아서 다시 쓸 테지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침묵에 가미하는 향신료 같다는 생각이 신선합니다.
너무 고요해서, 적막해서 우리는 홀로 중얼거리거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마침표처럼 꼭 잠근 문장보다는 말줄임표의 흘리는 의미 같은 소리, 그런 배음에 안심하는 때도 있습니다.

- 사색의 향기, 2025년 1월 7일 (화)




2025/02/09 12:04 2025/02/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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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딘다는 것

2024/02/03 15:18

풀은 바람에 맞서지 않는다
고개 숙이고
등 굽히는 자세로 견딘다
세상이 푸르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꺾이지 않는 눈물방울도
견디기 위해 흘린다

- 최우서, 시 '견딘다는 것'



2024/02/03 15:18 2024/02/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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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봄

2024/02/03 15:05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 알베르 카뮈


2024/02/03 15:05 2024/02/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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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2021/10/03 11:22

Youth     - Samuel Ullman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d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men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r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

해석






2021/10/03 11:22 2021/10/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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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소리

2020/04/02 09:02

허공에 울려 퍼지는 이름들
금을 친 운동장이 순식간 풀려난다

때에 길들인 좁은 목구멍
땅따먹기를 팽개친 노을이 달의 치마폭으로 숨는다

누군가 불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속에 집 한 채 짓는 일

별이 없어
목청껏 불러야 할 숲이 없는 나는
혼자 서성이다 숨는 구름이다

머물 집이 없는 목소리는 환청이 강하다
당신 쪽으로 뒤돌아보면, 나뭇잎 흔드는
저녁의 소리뿐

그리움 한 숟가락 퍼 놓은
내가 저문다

- 양현주, 시 '저녁의 소리'



2020/04/02 09:02 2020/04/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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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껍데기

2020/04/02 08:57

파도 소리 앞에 귀 하나를 두고 갔습니다.

- 최재훈, 촌철살 詩 '소라 껍데기'

빈 바다를 홀로 듣는 소라 껍데기는
누군가 놓고 간 귀 같습니다.
그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리를 대신 듣고 있는 귀.
지금쯤 바다는 초겨울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을 겁니다.

- 사색의 향기, 2019-11-26

2020/04/02 08:57 2020/04/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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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후렴

2020/04/02 08:55

수면에 비친 구름의 목덜미에 물결 자국이 흥건하다
수심이 깊을수록 푸른 것은
물의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굽이친다는 말은 단층의 은유인 물결이 생긴다는 뜻
물결이 이는 것은 수심이 떨리기 때문이다
소금쟁이가 거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지만
가라앉지 않으려 그들이 얼마나 숨을 참고 견디는지
그때 물의 괄약근은 또 얼마나 정교한 탄력을 유지해야 하는지
물결을 움켜쥔 소금쟁이의 발이 물빛인 것을 보면 안다
자신의 원형을 버려 가며 기꺼이 구겨짐을 견디는 것이
물의 굴절만은 아니겠지만
물에 결이 있는 것은 생의 굴곡에 대한 물의 습작
퇴고에 퇴고를 거쳐도 늘 물의 초고에 머문다
구름 소인이 찍힌 물결은 수심이 첨삭한 추신이다
수압으로 봉인된 수심을 풀면
익사체의 목록은 가라앉고 소문만 물결체로 뜨겠지만
온새미로 인양된 수심의 궤적은 늘 젖어 있어서
물결체를 읽으려고 바람이 온갖 자세로 수면을 들여다본다
잠자리가 꽁지로 수면을 두드릴 때 잠깐씩 열리는 물의 문
잠자리는 물의 경첩,
물을 속독하듯 물수제비가 저수지를 건너간다


- 김겨리, 시 '물의 후렴'



2020/04/02 08:55 2020/04/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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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참외

2020/04/02 08:50

모과는 가을이 되어서야
자신의 이름이
목과(木瓜)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때부터 모과는
덩굴줄기로 뻗어 나가는 노란 참외처럼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바닥 여기저기 흩어진다
떨어져 나간 이름을 찾으려는지
주위를 내내 서성이면서

햇빛도 노랗게 두리번거린다

- 배세복, 시 '나무참외'


목과(木瓜)는 모과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울퉁불퉁 생긴 그것이
겨울 달달한 맛을 주기 위해 한껏 익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가을도 노랗게 익어갈 것 같습니다.


- 사색의 향기, 2019-10-08

2020/04/02 08:50 2020/04/0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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