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멍의 깊이는 무려 1만 2262m. 한 번 빠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깊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구멍은 쇠로 만들어진 덮개로 봉해져 있다.
이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건 50년 전인 1970년 5월 24일부터다. 당시 구소련의 기술자들은 ‘우랄매쉬-4E’라는 시추 장비를 사용해 그 지역에서 구멍 몇 개를 동시에 파 들어갔다. 그중 SG-3이라고 명명된 구멍은 시추를 시작한 지 19년 만인 1989년에 깊이가 1만 2262m에 이르렀다. 이 작업이 계속 진행될 경우 SG-3는 1990년 말에 1만 3500m까지 도달하고 1993년에는 1만 5000m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1992년에 모든 시추 작업이 중단되고, 이후 소련 연방의 해체로 1995년에는 프로젝트가 완전히 종료됐다.
SG-3의 구멍 깊이가 1989년의 1만 2262m에 그대로 머물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땅속의 온도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던 데 있었다. 지하 3000m까지는 예측에 부합했으나 1만 2000m 이하에서는 온도가 180℃까지 치솟았던 것. 이는 애초 예상했던 온도보다 약 80℃나 높은 수치였다.
또 하나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암석의 밀도 감소였다. 땅속 깊은 곳의 암석은 높은 다공성과 투과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높은 온도와 짝을 이루면서 단단한 바위라기보다는 플라스틱처럼 흐물거렸던 것. 그런 곳에서 시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마치 뜨거운 수프가 담긴 냄비의 중앙에서 구덩이를 파내려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후 인류는 SG-3보다 더 깊은 구멍을 팠다. 2008년 카타르의 알샤힌 유전에 뚫린 1만 2289m의 구멍을 비롯해 2011년에는 러시아 사할린섬 근처에 1만 2345m의 해양 유정이 시추됐다. 2012년에는 석유회사 엑손모빌 계열사인 ‘엑손 네프트가스 리미티드’가 1만 2376m까지 파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구멍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여전히 콜라반도의 SG-3이다. 다른 것들은 모두 석유 개발을 위한 시추공으로서 대륙 표면이 아니라 해양에서부터 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럼 소련이 콜라 슈퍼딥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지구는 중심으로부터 내핵과 외핵, 맨틀, 그리고 지각 등 4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소련이 그처럼 깊은 구멍을 판 까닭은 우리 행성의 가장 바깥층인 지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지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좀 다른 데 있었다. 순수한 과학적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미‧소 양국이 체제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벌이고 있던 과학기술 경쟁의 한 사례라고 보면 정확하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불리는 ‘우주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183m까지 시추한 1966년에 이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거대한 우주 프로젝트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 자금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모홀 프로젝트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거기에 사용된 장비와 기술은 이후 심해 굴착 및 해양 굴착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즉, 대륙붕 석유 개발 기술의 기초를 제공한 셈이다.
미국의 모홀 프로젝트를 견제해 시작된 구소련의 콜라 슈퍼딥 프로젝트 역시 많은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화강암에서 현무암으로의 전환이 약 7㎞ 깊이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과학자들은 지진파 속도의 변화가 암석 유형의 변화가 아닌 화강암 암석의 변성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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