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지도 떨던 삭풍이 아랫목까지 한기를 몰고 오던 겨울밤이면
아버지는 보채는 나 때문에 가게까지 꼭 다녀오셔야 했다.
빨갛게 터져가는 홍시를 사오시던 아버지.
한밤 추위보다 아버지는 자신의 호주머니가 더 외롭고 추웠을 것이다.
겨울이 깊을수록 아버지의 외상장부도 점점 두꺼워졌으리.
공책 낱장을 뜯어 만든 봉투에서 홍시 몇 알 꺼내주시던
아버지 손은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먹고 자나 안 먹고 자나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똑같은디."
늘 하시는 그 말씀이 언제 들어도 재밌었다.
먹고 자나 안 먹고 자나 아침에 자고 나면 배는 똑같이 고프긴 고플 것이었다.
- 박경주, 수필 '여우와 포도밭' 중에서
밤중에 "홍시"를 먹어보았기에
"먹고 싶은 것을 참아낸 아침이 참지 못했던 아침보다
훨씬 아름다웠으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지요.
생각과 경험은 이렇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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