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명주수건

2011/09/06 03:38

written on 2001.10.19

나는 유안진님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것은 말 속에 묻어나오는대로의 그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남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내게 보여지는, 느껴지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유안진님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은 이러하다.
순수함, 청초함, 동심의 세계, 깨끗함 등등...
짧게 말하자면, 맑은 하늘빛이다.

이건 아마도 유년의 느낌이 큰 것 같다.
내가 시를 잘 모를때 알던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유안진님을 무조건 좋아했다.
이유는 그녀가 짝사랑하는 대상인 소년이 그녀에게 보내준 두 통의 편지에
모두 유안진님의 시를 인용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서점에 갈때는 늘상 유안진님의 코너를 갔었었다.
그래서 그분의 책을 늘상 넘겨보곤 했었다.
그런 그때의 그녀의 이미지가 겹쳐지기 때문인것 같다.

또한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작품도 한몫거둔다.
'이빨에 고춧가루가 낀 모습을 편안히 보여줄 수 있는 친구'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문맥이었다.

이 한 문장과 그 소녀의 이미지가 내가 유안진님에게 갖는 선입견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시집을 고르다 우연히 유안진님의 시집을 발견했다.
도서가 극히 부족한 우리 학교의 도서목록 중에 그 님의 시집이 몇 권 있었던 것이다.
그래 정겨운 생각이 들어 한 권 집어들었다.

역시나 그 님의 글은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무엇인가가 있다.

불이 켜지는 골목길에
굵은 눈발이 내립니다
자수정 얼음박힌 내 벗은 알발을
따뜻이 어루만져주는 보드라운 눈발이

복숭씨에 피딱지 앉은
내 맨발목까지를
天上의 명주수건이
내려와 덮어줍니다


제목이 저녁눈이다.
님이 비유하신 '천상의 명주수건'이란 대목에서 그 표현력에 탄복했다.

2011/09/06 03:38 2011/09/06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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