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 겠지, 감사

2011/08/23 23:54

구나, 겠지, 감사 2005/12/27 00:44

당시 포스팅을 했을 때는 용타스님이 작성한 글이 아니었는데 다른 곳에서 업어왔을 때 출처를 제대로 몰랐었나보다.

"내가 방 청소를 했는데 형이 또 청소를 할 때 화가 났다."
"친구가 자기 생일 파티에 초대해 주지 않아 서운했다."
이런 식으로 크고 작은 불유쾌 정서를 반복, 반복, 또 반복하면서 반성도 없이 사는 것이 중생 놀음이다.

"즉(卽)한 순간에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각성은 평화를 잃지 않는다. 각성은 깨어 있는 힘이 길러진 만큼 그 명징성(明澄性)이 높아진다.
친구가 생일 파티에 초대 안 했다고 서운해진 것은 깨어 있음의 차원에서 보면 유치한 일이다.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되지 않은 사실을 안 순간, 깨어 있는 자는 '구나'한다. 즉 '친구가 자기 생일 파티에 나를 초대하지 않았구나' 하고 그 사실을 그냥 바라다본다. '바라다보는 힘 기르기'란 수도의 중대한 맥이다. 이 힘이 약한 자는 자신이 쌓아온 삼독의 업장에 휘둘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 순간 화가 났더라도, 서운해졌더라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더라도,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상황을 되짚어서 '바라다보는 힘 기르기'의 공부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일거 삼득(一擧三得)의 공덕이 있다. 과거의 업을 정화하는 이익, 미래의 업을 덜 짓게 되는 이익, 깨어 있는 힘의 탄력을 얻어가는 이익이 그것이다.
보다 효과적으로 본업에 몰입하려면 평화와 분노의 경계에 휘말려드는 희생을 극소화해야 한다. 그 좋은 방편이, 즉한 순간에 '구나·겠지·감사'하는 것이다.

▒ '구나·겠지·감사'의 실천
<1> 내가 방청소를 했는데 형이 또 방청소를 할 때 화가 난 경우
- 구나 : '형이 청소를 하는구나'하면서「구나」의 힘, 바라다보는 힘을 기른다.
- 겠지 : '방 청소가 되어 있는지 몰랐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형 마음에는 안 들었다든지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겠지」의 힘, 곧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正思惟)의 힘을 기른다.
- 감사 : '이것도 청소라고 한 것이냐?' 한다거나 '야! 청소 다시해라'는 식으로  신경질을 돋구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감사」한가 하면서, 긍정시각의 힘을 기른다.

<2> 친구가 자기 생일 파티에 초대해 주지 않아 서운해진 경우
- 구나 : '친구 모모가 나를 초대 안 했구나.'
- 겠지 :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깜박 잊었거나, 엄마나 친구에게 초청의뢰하는 과정에 누락 되었거나 우리 집 식구들이 나 없는 동안에 소식을 받았으나 잊고 못 전해 주었거나 등등 무슨 사정이 있겠지.'
- 감사 : '우리 반 급우들을 다 초청하고 나만 누락시킨 경우를 상상해 보면 정말 끔찍한 일인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감사할 일이요, 초청 못하는 이유를 쑥덕쑥덕 주변에 흉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이건 감사한 일이며, 어떻게 하다 누락된 이 상황에 대해 친구는 미안해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평소 그 친구가 내게 보여 줬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면, 정말 감사할 일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사례를 바로 공부 소재로 활용한다는 것이 신나는 일 아니겠는가? 천재란 반복이 낳는다. 부처는 관행(觀行)이 결정한다. 아무리 좋은 목걸이라도 목에 걸 때 의미가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오솔길이더라도 걸으며 즐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구나·겠지·감사', 이것은 성자들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 추출해 낸 일미(一味)의 한 방편인데, 여러 인연 있는 마음 공부인들에게 좋은 약재가 되었으면 한다.

실천이 길이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 법. 한두 번 실습해 보고 집어치운다면 의미가 없다. 적어도 백 번은 권한다. 불쾌한 마음이 드는 상황 백 가지 경우를, 기계적으로가 아니고 명상적으로 '~구나' '~겠지' '~감사'하고 관행해 본다면 평화와 분노의 경계를 수용하는 힘이 놀라울 정도로 길러질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라. 경계에 걸려 속 상한 것이 불행의 전반이 아니던가.
우리의 혼은 저 밑뿌리로부터 절규하고 있다. '해탈하고 싶어요' '평화롭고 싶어요'
'구나·겠지·감사'는 그 절규에 부응할 것이다. 또 이 명상을 하다가 보면 이것이 수도의 전부다 할 만큼의 체험을 얻을 것이다. 어느날 '스님의 법문을 접하고「구나 명상」을 백회 이상 했고, 그 공덕으로 이제 경계로부터 많이 자유롭습니다' 식의 편지 세 통만 받아 보았으면 한다. 이러한 마음 공부인이 있다면, 불원천리 찾아뵈면서 격려하고 싶다.
법당에서 울려나오는 행자님의 정근 목탁 소리, 겨울 새벽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맑음이 좋기만 하다.

- 용타스님,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2011/08/23 23:54 2011/08/2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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