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또 나는 무엇을 벗어 던지기 위해

2005/01/11 21:02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마경덕 - 신발論


글을 쓰는 내 남자친구가 지난 여름에 맨발로 대학로를 누볐던일을 이야기 해주었던게 생각이 났다.

느즈막히 친구의 점심 같이 먹자는 청에 이미 점심 끼니때가 지났건만 싫다 하지 않고 슬리퍼 신고 대문길로 주욱 나섰던 그는. 걷다 보니까 날씨도 추잡스럽게 덥고 답답한 마음에 슬리퍼 마저 벗고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내딪었다고 한다. 가끔 그렇게 도심을 맨발로 걷는 적도 있는 그였지만 한 낮에 그래보기는 아주 오랜만이었다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모습. 물론 저의 애인, 저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지요. 그가 그 초여름. 그 더운 날 벗어 던진 것은 사회적 인간이 꼭 깔끔 떨어야 하는 의무. 누구나 다 하는 것을 나도 해야만 하는 체면 치레였고 대신 넉넉한 오후를 산책하는 자유를 얻었던 것이었다고. 말해주더군요.

걷다보니 그 도시를 질러가는 사람들의 생뚱맞은 시선과 호기심이 온 몸에 꽂히는 동안 그들이 참 불쌍해 졌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나 명품이니 뭐니 싸고 후진 것 입지 않았지만, 요새는 아름다운 가게에 나오는 헌 옷이나 청계천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산 500원짜리 입던 옷도 내게 맞는다 싶으면 주저 없는 그에게 남들 짧은 치마 입을 때 나도 입어줘야 하고 이 트랜드 저 트랜드에 허우적대느라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말이지요.

그가 벗어 던진 것이 고작 신발뿐이었음에도 종내에는
잔뜩 추켜 입은 그들 보다 많이 얻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 그렇게 벗어 던지고도 아직 남은게 있으니.
이 허허로움과 외로움과 그리움.
내 삶에 또 나는 무엇을 벗어 던지기 위해
삶의 길에 서 있어야 할지 제법 고민 해 봐야 겠군요.
맨발의 자유로움. 사고하지 않는 느긋함.
사랑의 고통. 서러움. 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피색 나는 열정.
다기 한 세트. 철 지난 옷들. 밀린 빨래들.
또 깨끗한 척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사명감.
자식의 도리. 아 말로도 다 못할 만큼 많기만 하군요.
그러고 보면 난 아직도 힘이 좋군요. 그런 저런 것들
다 짊어지고 살고 있는 걸 보면. "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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