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연예인이냐

2004/12/17 20:35

"당신은 마치 시를 읽듯 혼잣말을 해"

무라카미 하루키 - 비행기 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는가


어릴적에 나는 몹시도 외로운 아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안에서 홀로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부모님은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쁘시고, 나이차이가 나는 형제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얼굴보기가 힘들다.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은 보통 오후 4-5시를 넘지 못했다. 어두워지면 엄마가 걱정하기 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런 내게 유일한 놀이꺼리는 혼잣말이었다.
'선경아, 뭐해? 나랑 놀자'
'구~래. 오늘은 학교 어땠어?'
'나 있지, 오늘 국어시간에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다~'
'그리구 체육시간엔 발야구로 뻥 야외홈런쳤어!'
'선경아, 어디갔어. 나랑 노올자'

이 놀이는 점점 내 생활과 밀접해져서 더이상 혼잣말은 놀이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때는 이 소리를 밖으로 내뱉는 일이 거의 없지만 집에서 혼자 놀거나 길거리를 걸을 때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어느 날 집에서 컴퓨터를 하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는가보다.
갑자기 건넌방에 있던 오빠가 소리를 지른다.
" 야, 니가 연예인이냐. TV 탤런트야?! 왜 아무도 없는데 들으라는듯이 혼잣말을 그렇게 해! 니 방에 카메라라도 설치됐냐? 니가 트루먼이야! 왜그래! "

오빠가 이 말을 하고서야 나는 내가 혼잣말을 심하게 하는구나, 깨달았다.
이일이 있은지 벌써 3년이 자나가는데도 난 아직 이 놀이를 심심치않게 즐기고 있다. 나와 이야기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니까.

오늘도 오빠가 저방에서 소리를 지른다.
" 야! 대체 어느 프로야! "

2004/12/17 20:35 2004/12/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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