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

2004/12/10 01:38

“아가씨 미안합니다. 냄새가 좀 날 겁니다.”

앞자리에 신사 한 분이 타더니 날 돌아보며 건넨 말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택시합승이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더구나 탑승한 술주정뱅이가 뒷자리의 여성에게 수작을 건넨다 싶어 아가씨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한사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잔하고 나니, 마누라에게 미안해져서 통닭 한 마리를 샀지요. 이걸 가지고 들어가서 자던 애들과 마누라를 깨워 먹이면 어찌나 잘 먹는지, 그게 그리 보기 좋아요.”

유안진 -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


가끔 맛있는 냄새를 지닌 무언가를 가지고서 지나가는 술취한 아저씨들을 보면 택시안의 저 아저씨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느즈막한 시간에 부러 챙겨서 사가는 저 사람들의 훈훈한 가정을 떠올리는건 거의 무조건반사다.

〃선경아, 아빠가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통닭 사왔다. 어서 나와서 먹자〃

가끔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던 통닭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내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도 미안했는지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늘상 예쁜 막내딸 생각에 무엇이든 사들고 들어왔던 아버지의 모습이 저 어르신의 얼굴에 겹쳐 보인다.

간만에 아버지의 얼굴이 또렷이 생각난다. 기분이 좋다.

2004/12/10 01:38 2004/12/1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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