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파견법, 무엇이 문제인가

2004/11/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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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은 21일 오후 1시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조합원 2만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4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한국노총은 이날 '정부의 파견법개악안(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개정법률안 등)은 비정규직노동자를 확산시키는 법'이라며 이의 폐기를 촉구했다. 또한 국회가 파견근로자법을 강행, 처리할 경우 11월말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포했다.

어제 종로를 지나가던 중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전체 노동자 비정규직화 파견악법 폐기하라', '노사관계 로드맵 저지', '연기금, 국민연금 개악저지'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 등을 들고 '노동자 총단결로 노동악법 저지하자' 등의 구호를 외쳐대는 그들을 보며 근로자파견법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기에, 인간의 노동력을 사고파는데 있어 개입되는 반인륜적 중간착취의 문제는 근대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차원의 것이다. 하기에 파견제도는 파견법 시행 이전에는 엄격히 금지해왔다. 그러다가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와 이미 불법적으로 자행되어온 "파견노동자 보호"를 명목으로 지난 1998년부터 시행해 온 것이 바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다.

시행 6년째인 현재 파견노동자에 대한 진정한 보호가 입법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가.


수 십 만에 이르는 합법적인 형태의 파견노동자는 합법적으로 저임금과 중간착취에 시달린다. 원청에서 파견업체에 제 돈을 주더라도, 부가세 10%를 기본으로 떼고, 관리비, 세금, 보험료,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중간착취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는 법논리 때문이다.
2년이 지나면 직접고용해야 하는 보호조항은 2년이 되기 전날 반복해서 해고되는 현실을 낳았다. 원청과 파견업체 사이에 계약이 해지되면, 자동으로 파견노동자를 해고한다. 억울하고 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실질 권한 있는 원청업체는 사용자 책임을 편법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도대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무슨 '보호'를 하고 있는가' 라고 울부짖는다.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근로자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생각한 바는 이렇다. 비정규직이 사라질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만큼은 막자는 것이 정부가 이 법안을 마련한 취지다. 정부는 법안이 시행되면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해지고, 이 과정을 통해 현재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이 서서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또 이같은 비정규직의 임금 상승 등으로 비용절감 효과가 줄어들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고 계산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허용업종 등은 확대했지만 차별금지, 상시적 채용금지 등에 대해서는 허술하게 규정한 파견법의 문제점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법안에 ‘불합리한 차별’ 등으로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입법취지가 무색할 뿐만 아니라, 설령 차별을 받고 있다 해도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사용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 임시직이나 파견직을 쓸 수 있는지 그 필요성에 대한 기준, 이른바 사유제한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기간제 계약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되 합리적 사유가 있으면 3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를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3년짜리 임시직’을 제도화·공식화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이번 개정안에서, 파견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건설공사·선원·유해 업무 등 몇 개의 업무를 제외한 전체 업종에 파견노동을 허용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경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화가 무분별하게 확산, 구조적 성차별이 강화된다는 게 여성계 입장이다. (2003년 현재 전체 파견노동자 5만여명 중 3만6000명이 여성이다. 파견노동자로 전락한 여성들은 대부분 임금 삭감,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기간이 제한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현실적으로 1년간의 육아휴직은 커녕 3개월 산전후휴가조차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우며, 임신·출산에 따른 부당해고 등의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네덜란드의 유연안정성법(Flex Wet)이 떠올랐다. 기간제 계약 남용 방지, 그리고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내용들을 명시하고 있는 이 법은 현재 한국의 고용주와 파견업체가 시행하고 있는 - 2년되는 날 전일 해고 하는 행동, 동일한 업무를 하는 곳으로 재취업을 시켜주면서 임금은 연차수당이 붙지 않는 불합리한 처사를 보여주는 등 - 노동시장의 모습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연안정성법은 예를 들어 파견회사와 맺은 임시고용계약도 고용계약으로 간주하고, 연속 계약의 일부가 파견회사를 위한 경우에도 연속계약으로 간주하며,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한 노동자파견회사와 노동조합의 단체협상을 통해 파견노동자들에게 연금과 직업훈련 등에 있어 고용기간에 따라 단계별로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이정도의 고용안정만 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열씸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말뿐인 상사들의 회유에 늘상 속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들. 그 기대감으로 열씸히 하다 짤리게 된 수많은 상처받은 노동자들. 그들이 거리로 나와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조금 더 안정적인 개법안으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2004/11/22 21:40 2004/11/2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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