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누워 도연히 취하세

2004/06/03 14:11

술을 마시는 까닭에 술마시는 - 술로해서 어울린 - 酒友들을 만나는 그 자리는 늘 즐겁다.
좋은 친구끼리 가슴을 열어 술잔을 나누는 그런 자리가 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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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술'처럼 술의 물리적, 화학적, 풍속적 성질을 날카롭게 암시하는 말은 달리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음성학적 감수성이 시원찮은 사람에게도 '술'의 마지막 소리인 설측음 'ㄹ'은 술의 물리적 성질, 이를테면 액체로서의 유동성, 그 흐름의 본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그 첫소리인 치마찰음 'ㅅ'은 술이 예컨대 증류수처럼 무미무취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빛깔과 향기와 맛을 지닌 화학적 집적물이라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후설모음 'ㅜ'는, 내게는, 술은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또 마시되(홀소리 'ㅏ'라면 연상시켰을 수도 있을) 폭음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 고종석, 기어다니는 것들이 날아다니는 것들을 중


본인은 궤변이라 말하지만. 단어 하나를 이만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이가 또 있으랴. 나로하여금 또다시 술에 반하게 만드는 그런 구절이 아닌가!

어제 심포지엄을 다녀온뒤에 친구 다군과 종로에서 술을 목적으로 만났다. 날씨도 더운것이 술이 술술넘어갈듯한 그런 날이었기에.
친구 다군 호군 박양 아군 과 함께한 그 자리가 무척이나 좋았던 건.
전날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본 그 아름다운 태양때문도.
낮에 함께한 심포지엄이 나름 재미있었음도.
올들어 처음 접한 그 더운공기때문도. 아님을.

그런 아름다운 단어와 함께한 시간이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자주 술을 마신다. 일부러 자리를 만들기도하고.
술이야 취하려 마신다고도 하지만. 적어도 난 취하려고 마시는건 아니었다. 여직은.
그런데 어제마신 술은 취하려마신 술인듯도 하다.

2004/06/03 14:11 2004/06/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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